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벌써 19권의 책이 발행되었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 몇 권이나 읽었을까? 몇 권을 읽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세계문학상이라는 포장지는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읽은 책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을까? 이번에는 또 얼만큼의 몰입도를 불러 올 수 있을까? 은근 기대가 되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웃음기 싹 빼고 이런 얘기를 한다면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간간히 웃음을 머금게도 하니 지루할 틈없이 단숨에 읽게 된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고령화사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이 책은 아무런 준비없이 고령화사회를 받아들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고나면 입맛이 씁쓸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젊은이가 되었든 늙은이가 되었든 어차피 모두가 겪어내야 할 일이지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남의 일 보듯 하는 나라의 허울이 분노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세상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치매를 앓던 엄마가 죽었다. 온전치 못한 몸과 궁핍한 생활은 딸에게 죽은 엄마의 연금이 필요했다. 사망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미라가 되어버린 엄마와 함께 사는 딸. 그녀도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당했으나 법은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지 않았다. 매달 엄마의 통장으로 들어오던 100만원 남짓한 돈은 이혼했고, 일이 없었던 딸에게는 생명줄이었다. 중년의 그녀를 찾아주는 일은 없었다. 방향제를 사고, 에어컨을 사고, 이웃과의 소통은 끊어지고. "엄마, 나 천만원만 해 줘!" 업친데 덮친 격으로 철없는 딸아이의 협박까지 받게 된다. 701호에 사는 공명주의 삶은 눈물겹다.

하나, 둘, 하나, 둘.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하여 병든 아버지를 부축해가며 운동을 시키는 청년도 있다.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며 대리기사를 뛰고 있는 준성. 그런 아들의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는 몰래 술을 마신다. 경찰서에 불려가 술에 취한 아버지를 데리고 오면서 아들은 몇 번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결국 쓰러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처지가 되지만 입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온다. 그리고 목욕을 시키려다 그만 일이 터져 버렸다. 넘어진 아버지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죄책감으로 오열하던 준성에게 701호의 아줌마가 찾아온다.

돌봄의 무게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해한다고, 공감한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자신을 돌볼 시간을 말한다는 것 만으로도 사치다. 명주와 준성이 그랬다. 한 사람은 50대의 중년이었고 또 한 사람은 20대의 청년이었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세상 천지에 홀로 내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부모의 죽음을 은폐했고, 사망 선고를 유예시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막다른 길에서 그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던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자신이 없다. 따뜻하고도 잔혹한 이야기라고 책의 소개글에 써있지만 이게 정말 따뜻한 이야기일까? 서울의 임대 아파트를 떠나 증평 시골집으로 이사가는 결말은 아름답다고, 끔찍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또 책의 소개글에 써 있는 걸 보게 된다. 심사위원의 말이 껄끄럽게 들리는 건 왜일까? 불현듯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일을 국민이 스스로 해결한다는 내용을 희망이라고 보았다면 그들은 아직 여유있는 사람들이다. 현실은 냉혹하다. 그리고 현실은 힘겨운 사람에게 내일을 꿈꿀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비관적이라고 말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에 닥친 현실이다. 그나마 희망이라면 준성이 자신의 꿈을 지켜주고자 했던 이웃 명주를 만난 것일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살짝 소름이 돋았다. 주변을 향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느껴져서.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