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라인 - 전2권 세트
볼프람 플라이쉬하우어 지음, 김청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1599년, 당시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정부였던 가브리엘 데스트레가 임신 중에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죽음은 앙리 4세와의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크나큰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쯤에서 나는 팩션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사실을 재창조하는 장르를 가리키며 주로 소설쓰기의 한 기법으로 사용되었다는 팩션..

일전에 읽었던 트레이시 슈바리에의 작품이 생각났다.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작품 역시 그림 한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까닭이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전율을 여기 이 소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을까? 내심 은근한 떨림을 기대하면서 책장을 열었다. 여기에서도 작자는 그림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그 그림을 따라 배경색을 바꾼다. 엄청난 스릴이 느껴지고 어느새 나 자신을 그 시대속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작자의 놀라운 힘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학자들이 삽질을 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비밀처럼 묻혀져 버린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씩 하나씩 파내어가는 과정들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모아지는 단서들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있기에 추론을 정립해가며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의심과 부정의 시선은 당연히 따라왔다. 하지만 아주 미세한 단서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 뜬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보여졌다. 대단한 그들의 직감력.. 그것은 아마도 그림을 따라가는 작자의 직감력이 아니었을까? 사실과 만나는 소설의 형태는 언제보아도 흥미만점이다.

욕조에 두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한 여인이 옆의 여인에게 손을 뻗어 그 여인의 젖꼭지를 잡고 있다... 어찌보면 상당히 외설스러운 그림일수도 있겠지만 그 그림속에 숨겨진 많은 속뜻을 책을 읽으며 알아가는 재미는 빠져보지 않으면 결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림 한장속에 그토록 커다란 의미를 숨겨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비로웠다.
단순히 왕비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여인이 있었음으로 득을 볼 수 있는 한쪽과 그 여인의 존재 자체가 방해물이었을 또다른 한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두갈래의 시선속에는 그 여인을 미끼로 매달았던 냄새나는 정치적인 술수들을 그려주고 있음이다.  가브리엘 데스트레라는 여인의 참담한 죽음을 보면서 중국 진나라 무장 항우의 총희 우미인이 생각났다. 사면초가에 놓여진 항우에게‘대왕의 의기가 다하였으니 천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겠읍니까’라고 말한 후 자진을 했다던 그 여인..
가끔씩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영웅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여인의 모습에 대하여.. 역사속에서나 혹은 민화나 전설을 통해서 만나지는 영웅 뒷편에 앉아 있던 여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추하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아름다움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마는 않은 듯 보여진다. 욕망때문이겠지만 그 욕망으로 인하여 출세의 길을 달리다가 그 욕망의 허세로 인하여 끝내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야 마는 흔한 이야기들처럼 이 책속의 여인 역시 그런 모습으로 비춰서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책속에 담겨져 있는 많은 그림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야기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그 그림들은 필요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이 사건에 흥미를 갖고 옛 문헌을 연구하던 중,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문서를 발굴했고 그것을 통해 400년 전 그 사건의 해답을 보여주고 싶어했던 건 아니었을까? 역사학회에 논문을 발표하여 이 사건에 대한 역사학계의 공식적 입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이것을 소재로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왜 그랬을까? 책의 말미에 붙여져 있는 부록에서 작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한 그림의 해석... 나는 절대로 환상에다 박사학위의 모자를 씌우고 싶지는 않다. 그 모자의 차양이 탁 트인 지평선을 가릴 것이다. 그런 주제를 가지고 주석과 전기적 사실들을 담아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해 몇 안되는 교수들과 학생들에게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커다란 손실이 아니겠는가.<부록 313쪽에서>...나는 이글을 보면서 작자의 혼잣말처럼 그가 진정으로 가브리엘 데스트레를 사랑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또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길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을 따라가며 거기에 묻혀져 있을 역사적인 사실들을 그려내는 이 소설은 정말로 흥미진진하다. 마침표를 찍는 문장 하나하나를 건너 뛰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안고 주고 있는 것이다. 보여질 듯 보여질 듯 보여지지 않는 수수께끼의 주인공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놓은거야?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속에는 혹시나 하는 스포일러를 찾아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끝내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는 이 소설은 기나긴 시간속을 달려왔음에도 결코 숨차지 않았다. 결승점에 도달해서야 모든 것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도 그렇지만 책의 말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보여주었던 부록은 이 책의 별미다. 역사적인 사실을 연도에 맞게 배열해주는 옵션도 빠뜨리지 않았다.

사랑을 갈구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닐것이다라고 나는 결말을 지었다. 정치적 희생양일 수 밖에 없었던, 욕망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채 죽어가야 했던 가브리엘 데스트레라는 여인을 통해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속에는 여인들이 갈구하는 그 흔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도무지 찾아볼래도 찾아지지 않는다. 사랑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과거형의 사랑모습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다. 책속의 주인공보다는 작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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