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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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이건 뭐지? 했다. 아무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냥 단순히 살아가는 남자들의 허풍과 위세? 얼마전 보았던 다큐가 생각났다. 그린란드 유목민의 생활을 다루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삶의 형태가 이채로웠다. 그들의 삶에는 여유가 있었다.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민족중의 하나. 뜨거워진 지구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이젠 그들에게 그들만의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없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민족의 삶을 포기하고 저마다의 목표를 안은 채 도시 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간혹 아버지의 삶, 혹은 할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어하는 젊은이도 있었지만 녹아내리는 북극의 얼음이 냉혹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던 장면을 통해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눈이 없으니 더 이상은 썰매도 탈 수 없었다. 이 책에 눈길이 갔던 것은 아마도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잠시 주춤거리게 만들었지만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슬그머니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라? 이 책, 은근 재미있다. 문명 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면 꿈속에서나 가능했을 그 남자들의 일상. 살짝 부럽기도 하다. 1년에 한 번 도착하는 보급선을 통해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로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개 썰매를 타고 밤과 낮을 이동해야 한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의 백야와 해가 뜨지 않는 겨울의 극야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삶에서 알 수 없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혹독한 추위와 외로움이 괴롭다.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던 유목민들의 삶을 되돌려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가 친구였으며 모두가 가족이었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제 집을 찾은 나그네를 따스하게 맞이해 주던 그들의 모습. 길 떠난 누군가를 위해 곳곳에 지어진 천막, 천막 안의 생활 도구와 음식들. 함께 한다는 게 그리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책을 읽다가 지은이의 이력을 찾아 보았다. 일생 동안 세계 곳곳을 탐험한 작가이자 탐험가인 요른 릴의 자전 소설이라 한다. 젊은 나이(19세)에 찾아갔던 그린란드 북동부의 매력에 빠져 그곳에서 16년이나 살았단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자신이 쓴 글을 어딘가에 발표하겠다는 목표도 없었다는 것이다. 단지 자신과 함께 지냈던 북극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잊고 싶지 않아서 기록했을 뿐. 그래서인지 문장마다 순수함이 느껴진다. 쉽게 말하면 단편소설을 묶은 소설집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모여 북극이라는 커다란 배경이 되어 주고 있다. 책의 제목에 붙은 '5'라는 숫자 때문에 잠시 망설였었다. 시리즈로 나온 책이라면 앞을 모르니 이해하기가 힘들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탄력이 붙으니 빠르게 책장이 넘어갔다. 여유를 품은 남자들의 사는 이야기다. 마치 황당한 요정의 세계를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랄까? 책의 소개글에서 보았던 것처럼 전편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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