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은 플라톤에서 유래합니다. 플라톤 시대의 그리스 지역에서는, 인간의 영혼은 원래 신적인 본성을 가졌는데 육체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신성(神聖)이 훼손되는 위기에 빠졌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생 동안 영혼을 정화하는 일이 지상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원래 고향은 동굴 밖 형상들이 존재하는 빛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영혼이 천상으로부터 추락해 동굴 속(현상세계)에 유배되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하는 이성적인 영혼이 육체에서 비롯된 욕망과 감정을 극복해서 천상의 이데아를 깨쳐야 합니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입니다.(글의 출처:네이버지식백과)


책을 읽는데 엄청 오래 걸렸다. 처음엔 읽을 만 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 책을 괜히 읽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슬슬 밀려 든다. 사실 지금까지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 쉬웠던 건 아니다. 전체적인 전개는 어렵지 않으나 그 흐름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상당히 크고 깊다. 평생을 도자기 빚는 일만 해 온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의 삶은 소박하다. 딸 마르타는 아버지의 눈길만 보고도 감정을 알아챌 만큼 살겹다. '센터'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열흘마다 집으로 오는 사위 마르살도 시프리아노 알고르에게는 소중한 사람이다. 이들은 곧 마르살이 '상주경비원'으로 진급을 하게 되면 '센터'에서 제공하는 아파트로 들어갈 계획이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그들이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곳 '외곽'과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센터'이다. '센터'에는 쇼핑몰과 놀이동산 등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날이 갈수록 '센터'는 인간성까지 파괴해가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팔고 싶지만, 우리가 반드시 팔아야 하는 물건을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신다면 더 좋겠습니다.. '센터' 전면에 붙여진 포스터의 말이다. !!! 도공 시프리아노 알고르는 자신의 집이 있는 외곽에서 도자기를 빚어 '센터'의 백화점에 납품을 하고 있었지만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자기를 매장에서 빼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당장 일을 잃게 된 그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이 찰흙인형이다. 마르타와 함께 인형 천 이백 개를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사위 마르살의 진급으로 인하여 '센터'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늙은 도공의 삶이 어찌 변할지는 알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두 개의 동굴은 상징성을 지닌 듯 하다. 시프리아노 알고르가 백화점에서 빼낸 도자기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저장하는 마을 한쪽의 동굴과 아파트 지하에서 발견 된 또하나의 동굴이다. 두번째로 등장하는 동굴이 바로 플라톤의 동굴이란다. 약간은 뜬금없기도 하고 뭐지? 하는 기분도 든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다루었다는 이원론이라는데 쉽지 않다. 마지막부분에서 '센터'의 아파트를 나온 마르타와 마르살이 이미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되돌아 오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그리고 그들은 떠나기로 한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떠날 수 있을까? 아무리 '동굴'을 발견했고 또한 그 '동굴'속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도 결국 '현실'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하는 것, 각박함 그 자체, 절실함 그 자체를. 삶의 또다른 이름은 '처절함' 혹은 '타는 듯한 목마름'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본다.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문장의 표현력이다. (여기서 또 한번 번역하시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많다. 그 작품들 중에서 <수도원의 비망록>,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읽어보았다. 매혹적인 글 맛이 참 좋았었다. 인간의 허울을 어쩌면 그렇게도 신랄하게 벗겨내며 비판할 수 있는지 경이롭기까지 했었다. 꾸밈없는 직설적인 문체가 작품마다 상당히 독특한 맛을 느끼게 만든다. 현실인 듯 허구인 듯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의 속성을 마구 파헤치고 있음이다. <동굴>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더불어, 특정 시대와 장소를 넘어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성찰이라는 사라마구의 후반기 문학적 특징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라는 책의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읽었던 작품들의 구성은 단순하다. 하다못해 등장인물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메세지의 울림은 깊고 강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그만큼 인간의 속내를 잘 파헤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인상깊은 구절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책이 되었다. /아이비생각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말할 가치가 없거나, 딱 한 번만 말하면 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 가치있는 다른 말의 자리를 차지해 버릴 것이다. 그 말이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불러올 수 있는 결과 때문에 그렇다.(-48쪽)

세상에 거짓이 얼마나 많은지, 어딘가에 진실이 조금 있기는 하겠지만, 진실은 계속 변한다. 그리고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혹시 그럴듯한 거짓말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117쪽)

삶이란 온갖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항상 균형을 사랑한다. 만약 삶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다면, 모든 구름 뒤에는 한줄기 밝은 빛이 있을 것이고, 오목한 곳에는 반드시 볼록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226쪽)

우리는 책을 선반에 꽂아두거나, 트렁크에 넣어두거나, 먼지가 쌓이고 좀이 슬도록 내버려두거나, 어두운 지하실에 처박아두기도 한다. 몇 년이 지나도록 눈길 한 번, 손길 한 번 주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은 전혀 개의치 않고 조용히 기다린다. 내용물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도록 입을 꼭 닫은 채.(-248쪽)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는 이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가 직접 이 말을 할 때도 있다, 곧 익숙해지겠지. 우리가 이 말을 할 때나 다른 사람들이 할 때나 진심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겐 체념을 가능한 한 당당하게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다. 적어도 다른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익숙해질 때까지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 묻지 않는다.(-334쪽)

우리는 예절이라는 것의 그물망에 사로잡혀 있어, 예의 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거미줄에 (-336쪽)

사랑이 사람들을 결합시켜 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결합시켜 주는 건 아냐 (-36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