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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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만이 꽃을 피우는 건 아니다. 겨울에도 꽃이 피지 않는가. 겨울에 피는 꽃들은 경이로움을 갖는다. 추운 계절인데도 꽃을 피웠다고, 쌓인 눈 속에서 꽃을 피웠다고. 경이로움과 예쁨, 딱 거기까지다. 그런 것들 속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건 어쩌면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시집을 통해 우리가 마음의 위안을 받는 것은 그 시집 전체가 아니라 시집이 품고 있는 한두 개의 겨울꽃 같은 시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제 주인인 시인의 이름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세상 밖으로 나온 후에 말 꽃보다 이름 꽃이 더 빛나는 경우도 있고 말 꽃과 이름 꽃이 똑같이 빛나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 각자가 만든 언어의 정원으로 옮겨진 말 꽃은 여간해서 시들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지 않을까? 행복한 일이며 감사한 일일 것이다.


아주 짧게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던 '풀꽃'이라는 詩는 자신을 불러준 주인의 이름을 세상 밖을 불러내 빛을 발하게 했다. 그리고 정원이 만들어졌다. 아주 작은 꽃들이 심어진. 말 꽃과 이름 꽃이 함께 빛났던 풀꽃 정원. 시집의 제목을 보면서 어쩌면 시인 자신을 향한 당부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한다. 나조차도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저 시집의 제목이었던 까닭이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요즘 들어 주문처럼 내 주변을 맴돌았던 말. 길 위에는 시인이 걸어왔던 삶의 여정이 있을 텐데 굳이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시인이 이번에는 소리를 크게 냈으니 그리 알아 달라고 한다. 조금은 의외구나 싶겠지만 시인의 마음 크기, 조바심과 서글픔과 안타까움이 또한 그러하니 살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를 힘들게 했던 코로나를 겪었던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한 줄 한 줄 썼다던 시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던 시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늙은 시인의 하루 하루가 넘기는 페이지마다 살아 숨쉰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고,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보자고. 미사여구 없이 넘어가는 날들은 담담하다. '채송화' 라는 시를 옮겨 적어봤다. 시인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던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채송화

난쟁이 꽃

땅바닥에 엎드려 피는 꽃

그래도 해님을 좋아해

해가 뜨면 방글방글 웃는 꽃

바람 불어 키가 큰 꽃들

해바라기 코스모스 넘어져도

미리 넘어져서 더는

넘어질 일 없는 꽃

땅바닥에 넘어졌느냐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나거라!

사람한테도 조용히

타일러 알려주는 꽃

시인의 시선은 누구라고 말 할 것도 없이 항상 낮은 곳을 향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길도 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찾아낸다. 몇 번을 봐도 시인의 '발견'이라는 것은 참 놀랍다. 보는 동안 어느새 다가가게 된다. 끝도 없이 들었을 질문에 시인은 시를 통해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을 해 준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이번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 보석을 주우신 듯한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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