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말들 - 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백승주 지음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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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언어학자가 펼쳐 보이는 낯선 한국어의 세계라는 부제와 미끄러지는 말들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살짝 삐뚤어진 요즘의 우리말이 생각났다. 사실 삐뚤어졌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말일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저희들끼리 통하자고 만든 말들이 사회를 지배하다시피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말에는 사람의 감정이 담겨있다.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이모티콘으로 기가 막히게 소통하고 있는 걸 보면 하,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 덕을 보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요즘 젊은 세대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도 더러 있다. 바쁜 세상에서 헉헉거리며 뛰어다니는 그들의 숨결이 들리는 듯도 하고. 어찌되었든 이런 현상을 '한글'을 만드신 분께서는 좋아하실까? 궁금했는데 어라? 저자의 말이 명쾌하다. 좋아하실거라고. 말이란 본디 변하는 거라고. 공감할 수 밖에 없다.


TV를 안본지 오래 되었다. TV라는 게 맨날 똑같아서 아예 폐업신고를 해버릴까도 고민중이다. TV를 보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언어, 즉 말 때문이다. 더 이상은 어떻게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자극적인 말이 난무한다. '아름다운 뉴스'라는 걸 따로 만들어서 좋은 일들만 챙겨서 보여주는 방송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10월 9일에만 대접받는 한국어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한국어 교육에 대해 다시한번 그 현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언어가 순수할 수는 없다고. 언어가 울퉁불퉁한 이유는 언어를 만드는 관계가 언제나 유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속에서 말들의 의미는 고정되지 못하고 언제나 유예된다고. 그렇게 유예되고 미끌어지는 말들의 의미를 붙잡아 그 말들이 숨기고 있는 관계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우리는 '언어'로 사회를 구성한다. 그런데 사회는 변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새로운 관계와 환경에 처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욕망을 가지게 된다.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동력은 바로 이 욕망이다 (-42쪽) 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좀 심하다 싶을 때도 많다. 다분히 소수적인 사람들의 욕망이 다수적인 사람들의 욕망처럼 다뤄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정치의 농간과 기업의 농간, 여기서 방송 혹은 언론도 기업으로 분류되는 까닭에 더 심각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뭐니 뭐니해도 욕망 중 최고봉은 '그냥 이유없이', '놀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43쪽) 생파, 생선, 낄끼빠빠, 케바케, 흠좀무, 할많하않, 오나전, ㅎㄷㄷ,ㅇㅋ, 띵작, 띵언, 댕청이등... 젊은 세대가 빠르고 쉽게 소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들은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지만 분별없이 그런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쓰고 있는 언론의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려하는 억지스러움이 꼴사나워 보이는 까닭이다. 인간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세상을 구분하고 범주화한다 (-126쪽) 이 책에서 하고 있는 말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부류가 바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서든 갖고 있는 걸 놓지 않으려고.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아무말 대잔치다. 그러면서 뜻대로 될 것 같지 않으면 편을 가르고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그들의 말이 무섭다는 것이다. 현실을 보는 눈과 귀를 막아버리려는 의도가 보여서. 언어들이 끊임없이 변신을 하는 이유는 착시 효과를 일으켜 부조리와 불평등을 은폐하기 위해서(-50쪽) 라는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각설하고, 저자는 왜 이런 책을 썼을까?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가짜에 물들어 가는 이 세상이 또 다른 지옥을 불러오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이겨보고자 조용히 입 다물지 못하고 이렇게 금지된 글을 쓴다 (-100쪽) 목소리를 내주신 저자를 응원합니다! 책날개에 저자를 소개하는 글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섬을 탈출해 육지로 건너와서는 대학교 한국어교육원에서 10년 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 시간 동안 한국과 한국어를 타자의 눈으로 보는 법을 익혔다, 는 말이 시선을 끈다. 지금도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시험이 사람들의 정신을 시험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과 형식 속으로 수렴"시킨다 (-이경숙 교육학 박사의 말) 그에 따르면 시험은 응시자의 자율을 보장하기에 느슨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정신적 통치 장치다 (-149쪽) 저자는 또한 뭔가 크게 잘못 되어져가고 있는 한국어교육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지금 한국교육의 현실을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울러 '교육이란 결국 사람이 서로를 살펴야 하는 일, 사람의 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란 것을 보여준 것이 지난 1년간의 비대면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대학은 비대면 교육의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오히려 혁신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고.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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