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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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제는 '젠더'다. 잘은 몰라도 얼마전까지 '페미니즘'에 관한 주제가 사회를 떠돌았다. 어느날 갑자기 '미투'의 현상은 한 도시의 시장을 재선거로 선출하게 만들면서 느슨해진 느낌이긴 하지만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성폭행범'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해자'도 아니다. 한걸음 물러서서 그 주제를 바라보고 있는 독자가 주인공이다. 다 읽고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책의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은유적인 스포라면 눈치채기가 쉽진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니 '젠더'니 하는 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념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대놓고 니편내편을 가르고, 대놓고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니 죽여야 한다는 식으로 마이크를 들이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개성'이나 '정체성' 따위는 '방관자'로써 보는 이들을 꽤나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읽을수록 몰입도가 강해진다. 흥미로웠고 이채로웠다.

'gender'는 사회학적인 성을 말한다. 젠더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섹스가 생물학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젠더는 사회학적인 성을 말한다고 한다. 젠더라는 말속에는 대등한 남녀관계라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생물학적 의미의 성을 의미하는 섹스와 다르게 젠더는 사회적인 성을 지칭한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더 짙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고 변화의 물결은 온다. 다만 그 물결의 흐름이 빠르고 느리다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 사회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에 따라 그 흐름은 분명 다를 것이다. 또한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외면하면서 기존의 문화에 길들여진채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거부나 외면은 세상의 빈정거림을 받는다. 그리고 혹독한 시련을 감내하게도 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이 옳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방면으로 설득시킬 수 있을 때 그 변화는 물결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자칫 잘못하면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동안 거센 파도를 읽으켰던 '미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혹은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타인의 시선은 왠지 모르게 우리를 움추리게 하는 마력을 지니기도 한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김지성, 이민주, 나채리로 요약된다. 지성은 문학평론가이다.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평론가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고 책이나 칼럼을 쓰기도 하며 방송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민주는 출판계에서 알아주는 젊은 시인이다. 게다가 그녀의 외모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느날의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어진 채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던 지성은 자신의 옆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던 여자를 보고 놀란다. 그 여자가 나채리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자신은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 여자는 알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렇게 시작된 지성과 채리의 동거는 한달정도 지속되는데 그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성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되고 만다.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민주가 '미투'에 투고를 하며 자살을 해 버린 것이다. 지성은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강간범이라고? 내가 살인자라고?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지성의 삶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이제부터 지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내용의 글을 읽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의 몸은 남성에게 오직 섹스를 위한 존재의 의미밖에 없는 것일까?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은 남성에게 하나의 인격체로써 존재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어서 오래도록 몸에 새겨진 것들은 쉽게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인다. 세상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라스트 듀얼>이 오버랩된다. 강간이라는 사건으로 여자는 자신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과는 다르게 두 남자(그 여자가 유부녀였으므로!)는 그 사건으로 자신들의 명예와 가문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실화였는데 아마도 그 사건은 그 후의 역사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수많은 '미투'를 바라보았던 타인들의 시선에 관해, 그리고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에 관해, 또하나의 성인 '間性'에 대해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으나 흡입력있는 문체에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아이비생각

혹 이것은 이들이 벌이는 축제일까. SNS라는 최신 소통기구를 이용한 저들만의 여가문화일까. 저들은 환호하며 저들만의 놀이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나만 그 코드를 못 알아보고 가관이라 코웃음 치는 걸까. 사회학자, 문화평론가, 심리학자, 소설가, 시인, 출판사 대표, 화가, 시민운동가, 건축가, 교수, 판사, 변호사, 의사, 전직 국회의원...... 그들이 벌이는 키보드배틀의 판은 어린아이들의 놀이판과 다름없었다. 아이들은 적어도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가. SNS라는 놀이터에서 노는 인간들은 그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말을 내뱉고 있는지, 조금도 알지 못했다.(-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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