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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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1991년의 작품 <개미>를 통해서였다. 당시 <개미>를 읽으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글을? 하면서 문장의 섬세함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개미를 관찰하며 글을 썼을 작가의 내공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가 전세계에서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인기있는 작가라는 사실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가 되는 걸 보면. 베르베르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하니 타고난 소질을 가진 사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법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활동하면서 과학잡지에 칼럼도 썼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썼을까? 또한 베르베르는 열세 살 때부터 혼자만의 비밀 노트를 기록해 왔다고 한다. 그러니 그 노트에 담긴 내용의 양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노트의 일부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이름으로 1996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을까? 또한 그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얼마나 방대한 자료였을까? 놀라운 것은 그가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는 무려 542개의 지식이 들어있다. 745쪽에 이를만큼 책의 두께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그 두께감을 느낄새도 없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길지도 않은 단편의 이야기들을 고집스럽게 하나하나 읽어내느라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한 내용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방면을 바라보고 있는 까닭에 흥미로움마저 느껴졌다. 어쩌면 이 한 권의 책이 그가 쓴 모든 작품의 원천이 되지 않았을까? 마치 마르지않는 샘물처럼 말이다. <개미>, <타나토노트>, <신>, <파피용>, <고양이>, <나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 수많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메리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1803년 영국의 과학자 알디니가 죽은 사람의 시체에 전기충격을 가해서 시체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만들었던 공포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아 쓰게된 작품이다. 작가들이 작품을 내놓게 되면 비평가들은 혹평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폭풍의 언덕>이나 <안나카레리나>, <피가로>, <햄릿>의 경우도 그랬다. 그럼에도 작가들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외면하거나 모르는척 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리이턴은 달랐다. 자신의 작품 <공공의 제국>에서 혹평한 기자를 왜소음경증 소아성애자로 묘사시키며 보기좋게 복수를 했다. 고구마에 묻은 모래를 물에 씻어 먹기 시작한 백번째 원숭이 이론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새로운 행동을 가장 먼저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 어린 원숭이였으며 그 다음으로 암컷 원숭이였다는 것이다. 가장 느리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것은 늙은 수컷 원숭이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새로운 습관이 백마리라는 숫자를 넘어서는 순간 전염이라도 된 듯 인접지역의 원숭이들까지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적에너지가 전파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인간 역시 그와 마찬가지의 패턴을 보였다고 한다. 유연한 사고를 가진 젊은 층의 변화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는 기성세대의 고집스러움을 여기서 또 보게 된다. 이런 연유로 인하여 어쩌면 세대간의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양이의 역사는 이채로웠다. 키프로스섬의 신석기유적에서 인간의 유골과 함께 고양이 뼈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고양이가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함께 들여왔다는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시대에 고려인들을 통해서 일본으로도 고양이가 전해졌다.

재미있는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406쪽에서 침팬지들을 상대로 한 실험이다. 사다리를 세워놓고 그 꼭대기에 바나나를 놓아 둔 빈 방에 침팬지 다섯 마리를 들여보낸다.한 침팬지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사다리로 기어올라 바나나에 다가가면 천장에서 찬물이 쏟아져 침팬지를 떨어뜨린다. 다른 침팬지들도 시도를 해 보지만 모두 찬물을 뒤집어쓰고 바나나를 포기하게 된다. 그 후 찬물이 떨어지지 않게 한 다음 물에 젖은 침팬지 한 마리를 다른 침팬지로 대체하자 원래부터 있던 침팬지들이 새 침팬지가 사다리로 올라가는 것을 말린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새 침팬지는 자기를 제지하는 침팬지들과 싸운다. 한 마리와 네 마리의 싸움이라서 새 침팬지는 뭇매를 맞는다. 다시 물에 젖은 한 마리의 침팬지를 새 침팬지로 대체했더니 그가 들어오자마자 앞서 교체되었던 침팬지가 덤벼들어 새 침팬지를 때린다. 다시 또 한 마리를 대체하면 역시 새로 들어온 침팬지는 들어오자마자 매질을 당한다. 그들에게 바나나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교체된 침팬지들은 찬물을 뒤집어 쓴 적도 없으면서 사다리에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의 관심사는 새로운 침팬지가 언제 들어오는지 문을 살피는 것뿐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음직한 주제가 아닌가? 이 실험이 한 기업에서 나타나는 집단행동을 연구하기 위해 실시되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작가는 내용보다는 형식이 더 중요해지고 겉치레가 실속을 압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작가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생각만 하고 있을 뿐 그것을 바꾸려는 실천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인간 이전에 이미 이 지구상에 살았던 동물이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이 잡식성이라는 게 새삼스러울 뿐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벌새 전설을 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닥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생각하게 된다. 아주 옛날 인간이 생겨나기도 전에 거대한 불길이 밀림을 덮쳤다. 모든 동물이 달아나기에 급급했지만 오직 한 동물만은 달랐다. 아주 작은 몸집의 벌새는 그 조그만 부리로 물을 한방울씩 길어다 불을 끄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 혼자서 대단한 걸 할 수 없다는 건 알아. 하지만 해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내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믿어."(- 95쪽) 昨今의 환경오염에 대처하는 우리는 어떤가. 딱히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현실이기에 지구의 기온이 높아지면 모든 생물은 크기를 줄인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반복되는 주제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같은 주제이지만 첨부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같은 주제라고 넘어갔을 터다. 그러나 베르베르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가 쓴 작품들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상식을 저버리는 주제도 많이 보인다. 지식의 오류라고나 할까? 무엇이 되었든 맨 처음에 시작한 사람들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시기와 질투로 인해 최초의 노력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다. 맨 처음의 멋진 사실들이 사장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책속의 주제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신화, 전설, 과학, 초자연적인 것, 우주, 자연, 고도로 발달했었다는 인간의 고대 문명, 신들의 존재, 수수께끼와 미스테리의 영역, 발상의 전환에 관한 이야기, 영적인 그 어떤 것들, 생물학적인 진화에 관한 것들.... 정말 독특한 것들이 많다. 거기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해석까지 덧붙인다. 책을 다 읽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지만 각각의 주제도 흥미로웠고 재미있게 읽혔다. /아이비생각

중국 속담 : 모기 한 마리가 당신 불알에 내려앉을 때, 그럴 때에만 당신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언제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66쪽)


"여봐, 방금 자네 친구에 대해 어떤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소크라테스가 그의 입을 막았다.

"잠깐만! 내게 그 얘기를 해주기 전에 <세 개의 체>라는 시험에 통과해 줬으면 좋겠네."

첫 번째 체는 진실의 체일세. 내게 얘기해 줄 내용이 진실인지 확인했는가?

두 번째 체는 善의 체일세. 내 친구에 대해 알려 줄 내용이 뭔가 좋은 것인가?

세 번째 체는 유용성의 체일세. 그것을 내게 말하는 것이 유익한 일인가?

"그렇다면 자네가 내게 알려주려는 내용이 진실도 아니고, 선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은 일이라면 왜 굳이 그걸 말하려고 하는가?" (-270쪽)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279쪽)


지구의 주인은 잡식동물일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먹이를 먹어 치울 수 있다는 것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종을 퍼뜨리는 데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지구의 주인으로 확고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형태의 먹이를 삼킬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인간은 개미, 바퀴벌레, 돼지, 쥐들처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들 다섯 종은 거의 모든 종류의 먹이, 심지어 먹이의 찌꺼기조차 맛보고, 먹고, 소화시킨다. 또 이 다섯 종은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기 위해 언제라도 먹이의 종류를 바꿀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먹이 때문에 전염병에 걸리거나 독성에 치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먹이를 먹기 전에 반드시 시험을 해본다.(-578쪽)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대개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현재 인간 세계는 <왜>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떻게>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661쪽)

허물을 벗는 동안 뱀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7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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