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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사랑을 이야기하다 - 신화 속에서 찾은 24가지 사랑 이야기
최복현 지음 / 이른아침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신화의 매력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뭐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따지고보면 늘 그 얘기가 그얘긴데도 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아마도 내가 신화를 좋아하는 까닭이려니 생각한다. 옛날 늦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던 할머니가 빌고 빌어 아이를 낳았는데 구렁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열심히 키웠다. 나이든 구렁이 아들이 장가를 보내달라고 했을 때 할머니는 잠시의 망설임을 뒤로 하고 옆집의 어여쁜 셋째딸과 결혼을 시킨다. 결혼 하던 날 밤에 구렁이 신랑은 멋지고 잘생긴 남자로 변하였다. 저주를 받았으나 사랑을 얻었으므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를 시샘한 두 언니가 있어 구렁이 신랑이 한양으로 올라간 뒤에 그의 허물을 태우게 하니 구렁이 신랑은 아내가 자기를 버렸음을 알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아내는 어찌 되었을까? 우리의 설화 한편이다.
그런데 설화속에서 만나지는 사랑의 모습을 그리스 신화속에서도 보게 된다. 두 언니들로 인하여 에로스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프시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구렁이 신랑을 찾아 끝도 없는 길을 헤매던 아내는 검은 돌을 흰돌로 만들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돌밭을 일구기도 하고, 새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종내는 구렁이 신랑의 지하왕국을 찾아가 남편과 해후를 하게 된다. 프시케 또한 그렇다. 어딘지도 모를 남편의 행적을 찾아 나서면서 아프로디테의 시험에 걸려들게 되지만 그 역시 신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단계까지 다다르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설화와 그리스 신화속에서의 여인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구렁이 아내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구렁이 신랑에게 묘한 여운의 수수께끼같은 말을 빌어서 끝까지 자기 자신이 지키지 못한 사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사랑을 다시 찾게 되지만 프시케는 다르다. 마지막까지도 호기심을 버리지 못한채 죽음의 잠에 빠져들게 되어 결국 에로스의 도움으로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모습이다. 그것뿐인가?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적장을 사랑한 메가라의 공주 스킬라의 이야기는 마치도 우리의 낙랑공주 이야기와 그 흐름이 흡사하다. 호동왕자를 위하여 자명고를 찢어버린 낙랑과 적장을 사랑하게 되어 아버지의 자줏빛 머리카락을 뽑아버리는 스킬라.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건데 이토록이나 힘겨운 고통을 잉태하는가 말이다.
신기한 것은 사랑도 무슨 특권인양 다루었다는 점이다. 늘 그렇다. 너무나 멋지고 잘생겼거나 여신도 질투할 정도의 미모를 가졌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다소 억지스러운 면도 있는 듯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되는 그것또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사랑이 잉태하고 있는 것들의 느낌은 참으로 다양하다. 믿음이나 의심, 혹은 질투와 시기, 오해와 열정,증오와 저주 따위의 힘겨운 고통도 들어있다. 프시케와 에로스에게서 나온 딸의 이름이 '환희'라는 것만 보아도 사랑의 결실을 맺기까지가 엄청 어려운 것만은 사실인듯 보인다. 작가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 비록 고통을 받을지라도 한 번쯤은 죽을만큼 사랑해 볼 일이다.... 라고.
아폴론을 피해 월계수 나무가 되어버린 다프네, 꽃으로 다시 피어난 히아킨토스나 아도니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아도취의 의미 나르키소스의 이야기, 제우스의 여인이었던 이오, 칼리스토,레토등 불운의 여인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이 책속에서는 보이지 않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죽음도 불사한 사랑이야기등 수도 없이 많은 사랑이야기가 신화속에서나 혹은 우리의 설화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한결같이 고통이 따르는 사랑이야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누구나에게 좋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것을 차지한다는 게 어렵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어느 영화속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그때 그때 주지 않는다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그 얄미운 바람이라는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아줘요... 사냥에 지쳐 잠시 쉬면서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속삭이던 케팔로스의 목소리를 바람이란 여자와 정분이 난 줄 알았다던 그의 아내 프로크리스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다. 그때부터 아내 외에 다른 여자와 속삭이는 사람을 바람난 사람이라고 했다나 뭐라나... 헤라의 질투때문에 제우스의 아이를 갖고도 힘겨운 나날을 견뎌야 했던 레토에게 한모금의 물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농부들이 목마름도 잊은 채 퍼부었던 레토의 저주로 인하여 등이 녹색으로 변하고 배가 흰색으로 변하여 죽을 때까지 물가를 떠나지 못했다는 개구리의 시조이야기는 이 책속에서 찾아낸 재미이기도 했다. 이렇듯 신화속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머문다.
사랑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찌보면 인류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라고 했던 작자의 말처럼 세상은 온통 사랑타령이 넘쳐나는 것 같다. 좀 더 멋지거나 아름다운 상대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열망 또한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고 또한 시간이 흘러서 그 사람에게 길들여지게 된다고 한다. 즉 익숙해진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이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것에서는 새로운 느낌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또다른 누군가를 찾아다니며 또다른 사랑을 꿈꾸게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사랑의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 알 수 없다.
책장을 덮고 나니 여우와 어린왕자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길들여진다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여우가 말했었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것을 찾아 헤매는 건지도 모를일이다. 여우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마음으로 바람을 볼 수 있을 때 엄마를 만날 수 있을거야"
<오세암>이란 영화속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던 길손이에게 스님이 해주었던 말이다. 도대체 마음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도 요란하지 않게 마음으로 할 일이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