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드는 사람 - 개정보급판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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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보기 시작한 잡지에서 남미 최남단 파타고니아에서 양을 치며 살아가는 늙은 목동의 사진을 보게 된다. 독일 기자인 폴커 한트로이크가 기고한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고 무언가에 홀린 듯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바람을 만드는 사람 '웨나'를 열두 살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찾아다녔다는 네레오 코르소의 이야기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상당히 관념적인 소설이겠거니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네레오 코르소의 여정을 따라가는 동안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웨나'가 단순히 전설속의 인물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뭘까, 이 알 수 없는 전율은.


어린 소년은 도박과 술에 찌든 아버지에 의해 목동으로 팔려갔다. 고원의 외진 오두막에서 맞이하던 첫날 밤 세상의 모든 것을 뿌리뽑을 기세로 달려들던 바람이 무서워 몇날 며칠을 울었다. 그러다 늙은 가우초를 만나 바람을 만드는 '웨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목동으로써의 삶에 적응하며 '웨나'의 흔적을 찾아 협곡을 누빈다. 파타고니아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탐험가 마젤란이 원주민의 발자국을 보고 '커다란 발'이란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는데 원주민어로는 '황량한 해안'이라는 뜻이란 말도 있다고 하니 이름만으로도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어림 짐작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모두 품은 곳으로 파타고니아 안데스와 파타고니아 대지로 나눈다. 대부분 화성암과 변성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해안에 낭떠러지가 솟아 있는 곳이 많다. 경작에 적합하지 못한 지역이 많아 목축, 특히 양이나 소를 방목하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에 석유개발이 시작되면서 파타고니아 지역 개발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목동인 가우초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가우초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한 초원지대 팜파스의 주민이나 목동을 일컫는 말이다. 목동은 철저하게 혼자인 삶을 살았다. 서로 떨어진 각자의 오두막에서 그가 탈 말과 양치기개들이 전부였다. 때가 되면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오는 몇몇의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에스파냐인과 인디언의 혼혈로 19세기 중반까지 번성했다는 말도 보인다. 왜 이렇게까지 파타고니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미리 찾아본 파타고니아에 대한 정보는 이 소설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소설의 주인공 네레오 코르소의 삶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이곳에서 끝을 맺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그가 떠났던 남미의 모든 여정속에 파타고니아라는 의미가 너무도 깊게 내재되어져 있음이다. 책을 읽고나니 네레오 코르소라는 가이드를 따라 파타고니아 고원지대를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그 여행을 끝내기에 살짝 아쉬운 마음도 있고.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가우초 이야기는 이채로웠다. 무언가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행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 영혼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이 삶의 의미를 여행에서 찾고자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삶에 대한 정의를 찾는다는 게 어렵다는 말일 터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동서남북의 문을 통해 인간의 生老病死를 보았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하루하루가 붕어빵을 찍어내듯 같은 패턴으로 살아진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권태롭다. 길들여진 것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떠나보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나의 하루는 특별하고 멋진 날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막 찍어낸 붕어빵처럼 따뜻하고 바삭한 날이 있는가 하면 온기를 잃은채 찌부러진 하루도 있다. 그 권태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혹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한다거나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고 가끔 우리는 여행을 떠나지만 그 여행끝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그저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살면 되었던 거라고. 목동 네레오 코르소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도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아이비생각


우리의 삶은 웅덩이와 같소. 우리의 모든 욕망이 뒤섞인 혼탁한 물로 가득 차 있는 웅덩이 말이오. 태양이 내리비치면 웅덩이를 가득 채운 물이 조금씩 증발하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에 이르면 흘수선에 도달하오. 이때 우리는 처음으로 한번도 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바닥을 떠올리게 된다오.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절대 드러나지 않는 진실과 대면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오. 우리가 믿었던, 어쩔 수 없이 믿을 수 밖에 없는 것들의 진실이 드러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오. 그러나 우린 그 바닥에 더러운 오물이 있을지, 어떤 고결한 것이 있을지 알지 못하오. 그걸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모든 물이 증발하고 바닥이 드러났을 때뿐이오. (~248쪽,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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