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호랑이 책 - 그 불편한 진실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2
이상권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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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한반도에는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살고 있었을까. 한 해에 1,500마리 정도가 죽었어도 그들의 생태계가 유지되었으니까 호랑이와 표범을 합치면 적어도 수천 마리는 되었을 것이다.(-55쪽)


책표지에서 '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을 보면서 어느 정도는 짐작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외면하고 싶어하던 역사의 오류를 짚어내겠구나 싶어서. 어쩌면 그래서 더 시선이 갔을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오류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동물을 다루는 동물다큐는 볼 때마다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듯 하여 즐겨보는 편이다. EBS 다큐프라임에서 <범의 땅>이라는 다큐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이땅에 그토록이나 많았다던 한국호랑이를 다루고 있었다. '범'이라 함은 호랑이와 표범을 함께 아우르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한반도는 지형적인 면을 보더라도 범이 살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사자가 초원을 누빈다면 범은 숲을 누빈다. 그만큼 옛날의 한반도는 숲과 골이 깊었다. 그만큼 우거진 곳이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조선말까지도 남산의 호랑이를 잡아 달라는 민원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어린 시절에 자주 듣던 말중에 '호환마마'라는 말이 있었다. 1963년에도 호랑이가 잡혔다고 하니 그들의 끈질긴 삶의 여정을 알 수가 있다. 호랑이는 자신들이 살던 땅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할 수 없이 인간 가까이로 내려왔다. 그리고 죽어갔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조선 호랑이 멸종'에 관한 사실이다. 일제에 의해 조선의 호랑이가 모두 멸종되었다고 알고 있는 우리의 잘못된 시선을 지적하고 있음이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호랑이와의 전쟁은 시작되었으며 그 끝에 일제강점기가 있었을 뿐이라고. '그 불편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어디 이것뿐일까마는 그래도 이렇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말처럼 옛날과 같이 지금도 이 땅이 범의 땅이었다면 어땠을까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빨리빨리문화를 가진 우리 사회가 과연 그런 세상을 용납했을까 싶지만.


원래 이름은 범이었으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자마자 '범 호虎'자에다 '늑대 랑狼'을 결합시켜서 호랑이라고 부른 것이다.(-83쪽)

원래 표범은 그냥 '표'라고 불렀지만 범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표+범=표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또는 '작은 범', '꽃범', '돈범'이라고도 불렸다.(-124쪽)

성황당은 원래 '산왕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산왕' 즉 호랑이 신을 모시는 곳이다. '산황이시여, 우리 마을을 지켜주십시오!'하는 뜻이 들어 있는 말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이 단어가 세월이 흐르면서 발음하기 쉽게 '사낭당' 또는 '사낭'이라고 바뀌고, 또 지역에 따라 '사'가 '서'로 발음되면서 '서낭당'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176쪽)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 옛날 옛적 호랭이 담배먹던 시절에~ 라는 이야기처럼 호랑이에 관한 설화나 속담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민화를 통해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림중의 하나가 '작호도鵲虎圖'일 것이다. 용맹스럽게 그려진 범의 모습도 있지만 희화화되어진 범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범의 존재는 여러 의미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사실 작호도는 중국에서 내려온 화풍이라 한다. 그 안에 그려진 그림도 호랑이가 아니라 원래는 표범이었다. 나무를 잘타는 표범이 자신의 알까지 먹어치우는 걸 본 까치가 표범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을 담았다고 하는데 그 그림속에 담긴 의미는 작고 힘없는 백성을 괴롭히던 탐욕 많은 벼슬아치들을 그린 것이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민속의 한 단면을 알게 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수 있게 된다. 호랑이가 일본식 작명이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일전에 <대호>라는 영화를 통해 멋지게 그려졌던 호랑이가 생각난다. 山君으로써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마지막 한국호랑이...조선시대에는 호랑이 한마리를 잡으면 집 한채를 살 수 있는 돈을 벌었다고 하며 호랑이를 잡는 정예군인 '착호군'도 있었다. 마을의 원님까지도 착호군을 홀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것뿐일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가장 앞장서서 적군을 향해 총을 쏘았던 이들도 착호군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만큼 호랑이는 작가의 말처럼 가죽은 남기지 못했으나 역사속에 길이 살아남았음을 알 수가 있다. 어린 아이도 아닌데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였다.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혔다는 말이다. 이승만 박사가 일본에 들렀을 때 당시 일본수상이 '한국엔 아직도 호랑이가 많습니까?' 하고 물었다는 일화가 있는 것만 봐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살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많던 호랑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조선 호랑이의 표본이 일본에 남아있음은 아쉽다. 아니, 호랑이와 표범이 뛰어다니던 한반도를 상상할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아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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