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시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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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찾고 추구하는 존재거든. 때로는 자기가 무얼 찾는지, 왜 추구하는지도 모른 채 찾고 추구하지. 몽유병 환자처럼 말이야. 찾다가 못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추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56쪽)

나바호족 쌍둥이 전사가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찾아 길을 떠났다. 무너져 내리는 바위산과 사람을 토막 내는 갈대숲과 끓는 사막을 지나 아버지인 태양의 집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많은 위협이 쌍둥이 전사에게 덤벼들었다. 아버지를 만나 인정을 받고 싶었던 쌍둥이 전사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버지 태양의 환영은 없었다. 아버지의 수많은 시험을 통과했지만 "왜 나를 찾았느냐?",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가 아버지의 첫마디였다. 이 책속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에게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굳이 갖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있었으나 없었던 것처럼 살았던 것이라면 그것 역시 굳이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좋았을 것을 괜히 들쑤셔서 문제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모르면 약이 되고 알면 병이 되는 경우도 우리 삶속에는 적지 않다. 책 속의 주인공인 스물 아홉살의 청년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스물 아홉해를 사는 동안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번도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의심을 해 본적이 없었으며, 한번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을 겪지 않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된 한 사람으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가 느닷없이 심각한 문제로 청년에게 다가온다. 나는 왜 아버지의 부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지? 왜 지금까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걸까?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실은 그가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수많은 문제를 불러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발생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지금까지 뭔가 허전하고 쓸쓸했던 건 아버지의 부재때문이었을거라고. 그리고 그는 찾기로 했다. 아버지를. 그래서 그는 떠났다. 아버지가 있다는 그 곳으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가리거나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장식을 단다. 어느 쪽이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 마찬가지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장식을 달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장식이 제구실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릴 것을 돋보이게 하거나 돋보이게 할 것을 가리는 식이다. 어울리지 않은 장식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장식을 하지 않으면 가려지지 않거나 돋보이지 않을까 불안해서 무언가를 붙인다. 무언가를 붙임으로써 때때로 가려져야 할 것이 돋보이고 돋보여야 할 것이 가려진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79쪽)

솔직히 기대없이 읽은 책이었다. 단지 아버지라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있는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저 단순한 소재일거라고 생각했다. 이토록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버지와의 기억이 좋지 않은 채 남겨져 있다는 게 싫어서 어쩌면 위안삼을 어떤 핑게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속에서 보여지는 심리적인 묘사는 정말 놀라웠다. 저자에게는 실례될 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소설가 김 훈의 글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어쩌면 이리도 꽉 찬 울림을 전해주는지... 군더더기 없이 표현되어지는 문장속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은유적인 듯 하면서도 은유적이지 않은 표현이 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도대체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성악설을 지향해 온 터라 사람들이 쓰는 여러가지 가면의 형태가 늘 궁금했었다. 가면을 숨긴채 필요에 따라 바꿔쓰지 않으면 바보처럼 보일수도 있는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뭔가에 끌리듯 이 책을 쓴 저자의 작품을 찾아보게 된다. 일상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의 마음과 사랑에 대해 깊이있는 해석을 하고 있는 작품이 많은 듯 하다. 그 많은 작품중에 한권도 읽어보지 못했다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마음의 부력>, <사랑이 한 일>, <생의 이면>, <모르는 사람들>, <식물들의 사생활>, <미궁에 대한 추측>, <검은 나무>등 많은 작품의 제목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도서관을 가게 되면 이 작가의 책부터 찾게 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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