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린 - 낭만주의 시대를 물들인 프리마돈나의 사랑
빌헬미네 슈뢰더 데브리엔트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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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를 물들인 프리마돈나의 사랑' 이란 부제가 보인다. 프리마돈나는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소프라노 가수를 말하지만 질투심 많고 변덕스러운 오페라의 주역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말처럼 빌헬미네는 오페라가수로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또한 저자이기도 하다. 배우였던 어머니와 바리톤 가수였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재능을 고스란히 받고 태어난 그녀는 오페라가수로써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 베버와 베를리오즈, 바그너 등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들과 빈이나 파리, 런던, 베를린, 드레스덴, 피렌체 등 유럽 전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2년후에 책이 출판되었으며 독일에서 성애문학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면서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책소개글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의 편지와 일기등을 바탕으로 성관념이나 섹스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그렇다고하여 무슨 음란서적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녀는 일상생활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데 절제할 줄 알았다. 사회적인 평판과 자신의 즐거움을 구분할 줄 알았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성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물론 지금이라고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주로 끌려가는 입장 혹은 당하는 입장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어쩌다 성의 주체가 되기라고 하면 온갖 모욕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책이 사후 2년후에야 출판되었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책을 출판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써는 상당히 파격적인 도전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가볍지 않다. 그저 잠깐의 즐거움만을 위해 성적인 유희를 즐기지 않았다. 육체적인 쾌락만을 좇지 않았으며 정신적인 사랑을 위한 서로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치게 한다. 대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성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마음과 여성이 남성을 대하는 마음에 대해, 사랑이 없는 섹스와 상대방을 배려하며 마음을 다하는 섹스가 어떤 면에서 다르게 느껴지는지, 남성과 여성의 사랑 못지 않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도 편견없이 즐길 줄 알았던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있다. 성추문 사건은 지금도 상당히 민감한 주제다. 정치인도, 톱스타도, 사회적인 저명인사들도 성추문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았다. 옛날에 '조리돌림'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원래는 마을의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죄를 지은 사람에게 북을 짊어지게 하고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적어 목에 매단채 마을을 몇 바퀴 돌면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이 간음한 여인에게 가해지는 형벌로 바뀌었다. 오로지 여자에게만 그런 형벌을 내렸다는 걸 보면 아마도 가부장적인 체제가 강했던 조선시대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종시대의 섹스스캔들로 이름을 올린 어을우동 사건도 풍속이 문란해진다는 이유로 왕이 직접 처형을 선고했었다. 이 역시 여성이 성의 주체가 되었던 사건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꾀할 수 있었던 빌헬미네의 자제력은 상당하다.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초코렛의 이름으로도 유명한 레이디 고다이바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코벤트리의 영주 부인이었던 고다이바는 높은 세금에 허덕이는 농민들을 보고 남편에게 세금을 줄여줄 것을 호소했다. 그런 그녀에게 영주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돌고 온다면 세금감면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농민을 향한 너의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영주의 부인이었던 그녀에게는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소식을 들은 농민들은 서로 약속했다. 고다이바가 말을 타는 날에는 어느 누구도 밖을 내다보지 않기로. 그럼에도 아름다운 여인의 알몸이라는 유혹에 이끌린 양복 재단사 톰은 약속을 깨고 커튼을 살짝 들추어 훔쳐보았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댓가로 톰은 눈이 멀어버렸고, 이때부터 '피핑 톰'이라는 말이 전해졌는데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고 한다. 성적인 호기심으로 숭고한 뜻을 저버린 톰처럼 어쩌면 성적인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들여다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들여다보기에 안타까울만큼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책표지에 보여지는 그림이 바로 빌헬미네의 초상화로 그녀가 상당한 미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여러모로 교양이나 지식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그렇게 추하게 성을 이야기했을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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