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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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영국의 대표 문인이자 스릴러의 대가로 인간 실존과 신의 관계를 깊이 고찰한 가톨릭 소설가. 세계대전 중에 첩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국교회가 지배적인 나라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함. 당대에 대중의 인기와 문단의 찬사를 동시에 누린 희귀한 작가라는 말도 보인다. <브라이턴 록>, <권력과 영광>, <사건의 핵심>, <사랑의 종말>등 25편의 장편소설과 에세이, 문학평론 등 6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살인자와 아마추어 탐정의 대결이라는 추리소설 형식으로 가톨릭의 선과 악의 관념을 도입하여 새로운 차원의 소설로 승화시켰다는 말과 함께 카톨릭을 주제로 한 대표작이라고 나온다. 그린이 쓴 최초의 진지한 소설이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작가 자신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라면 아마도 그 책속에 자신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학창시절 괴롭힘과 우울증으로 몇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는 말이 이 소설의 분위기와 묘하게 맞닿아 있는 듯 하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음울한 분위기를 안고 있다. 마치 기분나쁘게 어둑한 뒷골목을 걷고 있는 듯한 그런 분위기다.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의 한 방편으로 권유받은 글쓰기가 작가에게 있어서는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자기만의 방식이었다는 말이 눈에 띈다. 종교문학으로 평가된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조차 갖지 못한 치기어린 소년을 통해 어떤 악을, 어떤 선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의 행세를 해야만 했던 치기어린 소년은 모든 것이 버거웠을 것이다. 어느날 자신을 데려왔던 사람이 죽음으로써 대신 그사람의 역할을 해야만 했던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천당과 지옥이라는 두 관념이 끝없이 대립하는 것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그 어린 소년의 입을 통해 '인생은 감옥'이라는 말을 뱉어낼 때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돈을 구하려 해도 어디 가서 구해야 할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말은 어린 아이가 겪어내기엔 너무나도 처절한 현실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자신은 무너질 수 없으며, 자신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야만 했던 소년 핑키. 어느날 문득 자신앞에 나타난 소녀 로즈는 또하나의 갈등으로 다가올 뿐이다. 살인을 저지른 핑키의 모든 정황을 알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핑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맹세한 소녀 로즈에게 핑키를 향한 '구원'이라는 굴레를 씌우기엔 뭔가 서걱거린다. 완전한 '악'이 될 수 없는 소년 핑키에게 어설프게 다가서는 '구원'의 잣대는 그에게 또다른 의심만을 불러오는게 아닌가 싶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영 찜찜했다. 뭔가 어설프게 짜맞춘듯한 설정이 마지막까지 시선끝을 따라왔던 까닭이다. 자연사로 처리되어버린 핑키의 살인. 그리고 죽은자와 스치듯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눴던 여인 아이다는 자연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다라는 여인을 통해 거짓은 들통날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세상이 정말 그런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지는 의문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핑키의 몸부림이었다. 자신을 데려왔던 사람을 위한 복수라고 생각했던 살인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던. 자연사로 판명났으나 자신의 살인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불안을 느껴야 했던 핑키는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 불안함과 흔들림에 관한 묘사는 묘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핑키의 불안과 흔들림은 살인에 가담했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그것은 또다른 불신을 낳는다. 그런 설정들이 정돈된 날줄과 씨줄처럼 보이지 않고 마구 엉킨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끝내는 마지막부분의 해설에 가서야 정돈되어지는 씁쓸함이라니. 냉혹한 살인자와 그를 추적하는 탐정의 대결을 그렸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하겠다. 숨막히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마치 한편의 성장소설을 본 것 같다. 카톨릭의 교리와 도덕과 신앙에 대한 물음을 담아냈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그 언저리만 뱅뱅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어찌 할 수가 없다. 소년 핑키를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덜 익은 과일을 먹은 느낌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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