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어른들이 읽는 동화쯤으로 생각했었다. 제목부터가 그랬고 소개글도 우화라고 써있었던 까닭이었지만 정말 그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던게 솔직한 내 심정이기도 했다. 그런 장르라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해도 어느정도는 무겁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책의 무게가 전해져와 힘겨운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소년에 비유되어진 모습을 한 어떤 존재에게서 얼핏 구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고, 혹은 귀의하기 위한 목적으로 길을 떠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한 행복... 행복은 무엇일까?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행복은 모습이 있기나 한 걸까? 행복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그 어떤 물질로 만나지는 것일까? 아니면 형체도 없이 그저 바람같은 걸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 어쩌면 영원한 화두가 될지도 모를 행복을 찾아서 길을 떠난 소년.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행복은 좀 더 깊은 의미의 행복인 것 같다. 세상속에 얽매인 행복이 아니라, 물질로써 만나지는 행복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만나지는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너무 무겁게 가라앉을 것만 같았던 책의 무게를 어찌하지 못한채 헉헉거리며 한장 한장을 넘겨가야 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 마티외 리카르는 원래부터 불교에 귀의한 사람은 아니었다. 분자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었을만큼 그야말로 과학적인 지식의 소유자였다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참으로 놀랍기도 했고, 왜? 라는 물음표를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철학자라는 소개글을 보면서 아하! 그럴수도 있는 일이었군, 했다. 참 신기하게도 불교를 생각하면서 파란눈의 스님을 연관짓는다는게 어렵기도 하거니와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얼굴도 아닌 까닭이다. 그것도 물론 지독한 편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내면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소년을 한번 따라가보기로 했다.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부탄왕국의 작은 마을에 데첸이란 소년이 살았고, 어느날 산악지대에서 은자로 지내던 외삼촌을 따라 눈의 왕국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 소년이 길을 떠나게 된데에는 물론 구도자가 되기 위한 내성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그저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음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무엇인가를 갈구하고 찾아헤매이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금강석처럼 천복을 누리라'는 뜻을 가진 소년의 이름 데첸 도르체에서조차 우리네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만 같았다.

글의 배경을 알고 싶어서 부탄왕국을 찾아보았더니 남부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라고 나온다. 정식명칭이 부탄왕국인데 북쪽은 히말라야산맥의 높은 산으로 중국의 티베트와 접하고, 동쪽에서 남쪽은 인도의 아삼지방, 서쪽은 네팔과...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로 평야가 거의 없다고 한다. 최근까지 인도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고 티베트와 같이 쇄국정책을 써왔다고 하니 글의 배경이 될만한 요소는 충분히 가지고 있음이다. 그야말로 순수하다는 말로써 표현되어져도 부담스럽지 않을 그런 나라일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외삼촌 잠양을 따라 나섰던 험난한 여행길을 마치고 드디어 은둔자들이 머물고 있는 눈의 왕국에 도착한 소년은 스승이 될 독덴 린포체를 만나게 된다. 린포체라는 건 아마도 고도의 수행끝에 어느정도의 단계에 오른 수행자를 이르는 말인듯 하다. 그리고 소년은 명상하는 것을 배운다. 드디어 수행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오직 끈기를 갖고서 수행하고 또 수행하라는 스승의 말을 가슴속에 새겨둔채로 혼자 산으로 들어가 은거를 하며 수행에 정진하게 된다. 동굴속에 홀로 남은 소년이 수행을 하는 과정은 좀 무리하게 보여지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혹시 책속의 소년이 작자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테지만 책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까닭이다.

집착을 버리는 것만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단지 그 집착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악한 생각과 어리석음, 탐욕,허영, 질투심을 심어서 고통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뿐이라던 스승은 영적 수행의 바탕을 이루는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선한 마음을 갖고 관대하게 행동하라는.... 소년을 향해 던져지는 스승 독덴 린포체의 말들은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독덴 린포체를 통해 부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가히 환타지적인 요소를 갖고 있음을 묘사하는 대목도 있으니.... 그렇다하여도 후광을 업고 무지게처럼 빛으로 산화되는 스승의 죽음을 아주 잠깐동안 바라보았던 소년의 가슴속에는 어떤 전율이 흘렀을까?

얼마전에 보았던 <쿤둔>이란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양쪽 발에 족쇄를 채운채 엎드려 고행의 몸짓을 하던 한사람의 수행자를 보면서 달라이라마는 두손을 모아 합장으로 인사를 해 주었었다. 그 영화속에서뿐만 아니라 매스컴을 통해서라도 몇번을 본 적이 있었던 고행의 길.. 육체적인 고행과 정신적인 수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그들이 얻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자후기에서 보면 깨달음이란  살면서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게 아닐까 라는 말이 나온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나를 느낀다. 그럴수도 있겠구나, 마음을 조금씩 바꾸어 간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테니....

어찌되었든 소년은 은둔자의 생활을 끝내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자신이 살았던 마을 꼴마로 되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매순간 이런 의문을 마음에 지니도록 하세요. '죽는 순간 아무런 후회도 없으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라고요...그가 마을사람들에게 했던 지혜의 말씀은 다시한번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후에 소년은 다시 길을 떠난다. 부탄에서 가장 위대한 성지들을 찾아 떠도는 순례자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어 더없이 좋았고 즐거웠던 마을 생활을 버린 것은 농부가 된다거나 가정을 이룰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어쩌면 현실속에 안주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책 중간중간에 삽입되어진 그림들은 상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책의 늪에서는  무언가 의지할만한 것들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그런 나를 위하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몇편의 삽화가 도우미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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