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둔... 아주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목마름을 잠시 채워주었던 <티벳에서의 7년>을 보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었다. 왜 그랬을까? 뭔지 모를 끌림을 부정할 수 없다. 달라이라마... 지혜의 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티벳에서의 7년>이 달라이라마의 일면성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달라이라마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환생을 믿는 나라, 불교의 나라, 비폭력을 대표할 수 있는 달라이라마가 살았던 곳에서 만나는 불교 혹은 종교에 대한 정의는 나로하여금 되돌아보게 하여 작은 깨우침을 준다.

달라이라마의 환생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입적하기 전에 달라이라마가 쓰던  물품을 하나씩 골라내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좀 안스럽기도 했지만 어디든 종교라는 테두리안에 갇히다보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니 어쩌겠는가 싶었다. 환생하였음을 예시하는 환영을 보았다는 레팅 린포체를 통해서 아직 어린아이인 달라이라마를 찾아나서는 승려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들의 가슴속에는 아마도 가슴 벅찬 환희와 기대가 가득찼을 것이다. 스승이 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받아줄 그런 존재의 의미였으니 말이다.  라모.. 불과 다섯살에 쿤둔으로 불려워지는 소년. 그가 나중에 제 14대 달라이라마가 된다. 소년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려야 했던 아이는 결국 영적인 존재로써 키워짐을 받아들였고, 그토록 험난한 역사속으로 한걸음씩 걸어가게 된다. 자신과 자신이 안아주어야 할 중생들의 앞날일랑은 모두 부처님께 맡기운채로... 다섯살 소년이 쿤둔으로서의 첫발자욱을 뗐던 순간과 이미 성인이 되어 18세에 즉위하는 달라이라마로서의 소년은 그 의미자체가 너무도 달라보였다. 그가 짊어져야 할 짐만큼 그의 어깨와 가슴도 넒어져 있었으니 말해 무얼할까.

영화속에서는 그야말로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져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대하게 그려주고 있다. 무언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우리네 여린 가슴을 알기라도 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가는 그 모습이 왠지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변해야 한다고, 이제는 우리도 변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을 통해서 어쩌면 티벳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침입으로 티벳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리는 가운데 정치와 가까워지지 말라던 시종의 한마디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중국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던 까닭에 힘겨운 망명길을 선택해야만 했으니... 인도로의 망명길을 계획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이 아직은 어렸던 달라이라마에게는 너무도 힘겨운 고통이었으리라...  고통이 무엇인가 물으니 그것은 집착하고 했었던가? 모든 것은 내 안에서 시작되고 멸하니 오직 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법을 했었던가? 그 고통의 크기를 어찌할까?

중국의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티벳에서도 독립을 하기 위한 치열한 반란은 계속 되었고 그 와중에 너무나도 많은 생명들이 사라져 갔다.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으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던 시종의 말을 들으면서도 끝까지 티벳의 국민들과 함께 하고 싶어했던 달라이라마의 마음. 그가 인도로 망명길을 올랐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찡하게 눈물고여지는 순간도 있었다. 안타까움에 두손을 모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진 장면들이 아직도 나의 시선속에 갇힌채로 머물러 있다.

인도로의 망명길을 떠나 무사히 국경에 이르니 국경수비대가 다가와 묻는다.

감히 여쭈오니 그대는 누구시옵니까?

보시다시피 미천한 비구일 뿐이오.

당신이 부처이시옵니까?

나는 그림자일뿐이오.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서 그대들 자신의 선한 그림자를 보길 원할 뿐.

아직도 달라이라마는 티벳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산다고 한다.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백개, 천개 준들 무슨 소용일까? 돌아가고 싶은 제 나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부처님도 남의 죄를 씨을 수 없으며

남의 고통을 대신 덜어 줄 수 없으며

대신 깨쳐줄 수도 없나니.

중생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이것이 궁극의 진리이니라.

종교..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건데 그토록이나 인간의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가..
알 수 없는 하나의 존재를 앞세워 목소리만 높일게 아니라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것이 종교가 아닐까?
감히 말하건데 어떤 형식적인 면만을 앞세워 마음을 다스릴 수는 없을것이다.
마음을 유혹하는 존재로써 우리곁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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