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30년 기념집, 개정증보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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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판을 거닐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2017년의 겨울 글판에 소개되었다는 이 글귀는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는 듯 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울림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살짝 가져본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나 피상적인 것들만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마음, 그 안에 들어있는 정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고자 하지 않는 까닭이다. 詩는 어쩌면 우리에게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아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줄의 글귀만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허형만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알게 된 글귀이기도 하다. 사람마다 마음속에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개 두마리를 키우고 있다, 시인 허형만의 말이다. 어쩌다 그런 개를 두마리씩이나 키우게 되었는지...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그의 시는 꽤나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詩라고해서 무조건 서정적인 필요는 없다. 어찌되었든 우리 마음속에 울림을 주면 그게 詩가 아닐까 싶어서. 사실 이렇다하게 회자되어지는 시인의 이름보다 이렇게 삐죽 얼굴을 내미는 시인의 이름이 궁금증을 불러올 때가 많다. 그러니 겨우 25자의 글귀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글판에 소개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이름이 기억되는 계기가 된다는 건 아주 큰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이 이채롭다. 광화문 글판에 올랐던 글의 주인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고 그들이 사는 현재의 모습을 살짝 귀뜸해기도 한다. 광화문 글판을 직접 보았느냐고 물으니 어떤 시인은 지인들로부터 전해들었다 하고, 어떤 시인은 직접 가서 보았다 한다. 광화문 글판에 소개된 이후로 이름이 알려져 글쟁이로 거듭 태어난 이도 있었으니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되는 어떤 현상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광화문 글판을 소개하고 글의 주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글의 원문을 보여주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었는데 다음 구성에서 바로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문장의 앞뒤가 있어야 그 한줄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아하, 바로 여기서 요만큼을 따 온 글귀였군... 다시 읽는 기분도 새롭다. 그런 후에 광화문 글판을 읽었을 수많은 사람의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속에서 사람들이 광화문 글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전해주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마치 단편소설을 읽는 듯 하다. 昨今의 대한민국에는 정말이지 셀 수 없이 많은 글쟁이와 사진쟁이들이 있으니 엄청난 경쟁률을 보였을 터다. 마지막으로 광화문 글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여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글을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글씨체와 그림을 구성하는 것, 글판을 다는 시간이 계절별로 다르다는 것, 그리고 글판의 변천사까지.

특별시민이었을 때는 자주 보았던 광화문 글판. 글판을 보면서 늘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저 글을 선정했을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글판에 다음엔 어떤 글이 올라올지 기대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도민으로 살고 있기에 일부러 나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하지만 광화문 글판이 주던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25개의 글자가 전해주는 울림은 작지 않다. 광화문을 거닐다 읽게 되고 읽게 되면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 광화문 글판의 매력이다. 아주 작은 삶의 활력소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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