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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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 폭발했다. 그리고 이어 밀려드는 쓰나미. 쓰나미는 인간의 삶을 초토화시킨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거대한 지진해일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점점 조여오는 물, 그리고 섬이 되어버린 한가족의 평온했던 쉼터. 이제 모든 것을 삼켜버린 바다는 그 가족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9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할 수 있었던 건 괴물처럼 스멀거리며 자신들의 쉼터를 갉아먹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것 뿐이다. 작아지는 섬에서 부모는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까? 결국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작은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고작 8명뿐이다.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데려가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 한쪽 다리를 저는 루이와 한쪽 눈이 성치않은 페린과 또래에 비해 빈약한 몸을 가진 노에. 뭔가 부족한 녀석들이 선택되었다.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떠난 자와 남겨진 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떠난 자도, 남겨진 자도 함께 겪어야 할 심리적인 압박감이 책을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가 아니라 그들에게 닥쳐올 고난과 그들이 겪어내야 할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심장이 졸아들 수 밖에 없다. 모든 마을을 집어 삼키고도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으로 그들앞에 펼쳐진 끝없는 바다가 어느 순간에 화를 내게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그런 설정이 조금 뜬금없기는 했다. 지진해일이라는 재해가 저리도 평온한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바다가 아니라 그 바다의 위협속에서조차 살아남아야 하는 한 가족의 고통스러움이다. 또한 버리고 떠난자와 버림을 받은 이들의 갈등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속에는 아주 작은 희망이란 것이 숨을 쉰다. 모순일까?

소설은 떠난 자의 시선과 남은 자의 시선을 서로 교차시킨다. 너무나 상투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도 그렇고 누가 남고 누가 떠나야 하는가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 역시 너무나도 뻔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면 이상 기후를 만들어내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이며, 그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다. 세명의 아이들을 남겨두고 떠났음에도 엄마는 또다시 두명의 아이를 잃게 된다. 결국 살아남았으나 돌아오겠다던 약속을 지키기위해 남겨진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살기 위해 떠나는 한 여자의 굳은 의지를 보게 된다.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를 만났을까? 잔인하게도 작가는 독자에게 묻고 있다.

책을 읽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 이야기>였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동물들을 싣고 이민을 가던 중에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올라 타 표류하게 된다. 다친 얼룩말, 굶주린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보트 아래에 숨어있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굶주림으로 인해 동물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결국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이 배에 남게 된다. 이제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교묘한 동거가 시종일관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이 소설 역시 그 <파이 이야기>처럼 아주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조차 껄끄럽지가 않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나 자신이 떠난자가 되기도 하고 남겨진 자가 되기도 한다. 흥미로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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