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
폴코 테르차니 지음, 니콜라 마그린 그림, 이현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심우도>가 떠올랐다. 어쩌면 개와 늑대라는 두 단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는 늑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순간의 미묘함! 묘하게 빨려들었다. 불현듯 깨닫게 된다. 어느새 개에 동화되어버린 채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응원했다. 부디 '달의 산'을 찾아갈 수 있기를. 부디 자신의 본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이 책은 또한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도 떠올리게 한다.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채 제 동료들을 밟으며 계속 올라가기만 하던 애벌레의 꿈틀거림을. 알 수 없는 존재의 응원을 받으며 꼭대기에 다다랐던 애벌레는 결국 나비가 될 수 있었다!

개는 어느날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삼일 낮밤을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버려진 그 곳에서 주인을 기다렸으나 주인은 끝내 오지 않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개는 가로등 아래서 서글프게 울었다. 새벽녘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왜 울고 있어? 주인님이 날 버렸어! 먹을 것을 주며 노랗고 강한 눈빛은 이렇게 말했다. '달의 산'을 찾아가라고. 인간으로부터의 길들여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잃게 한다. 그러나 한번 길들여지게 되면 그것에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되지. 그리하여 개처럼 몇 날 며칠을 방황하게 된다. 개는 결국 체념끝에 '달의 산'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책은 떠돌이 개가 되어버린 길들여진 개의 여정과 함께 한다. 길 위에서 순례자 늑대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동행이 되어 '달의 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여정은 만만치가 않다. 원래는 늑대였으나 길들여짐으로 인하여 개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고뇌와 방황과 후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동행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서서히 변해가고 있던 개의 모습. 개는 부러운듯 바라보던 늑대들의 모습이 자신에게서도 보여지고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뉴욕에서 태어났으나 아시아에서 성장했다는 지은이의 이력이 이채로웠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껄끄럽지 않게 다가왔다. 책을 덮고도 여전히 <심우도>의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불성을 소에 비유했던 그림. 사찰을 찾을 때마다 심우도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심우도는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고 길들여 그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왔으나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다시 속세로 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과정을 열단계로 나누어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 개가 '달의 산'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의도치 않았으나 두번을 거듭 읽게 된 책이다.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갑자기 어떤 신비가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버려지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다. 하루하루가 덧없이 지나고 밤은 그림자처럼 달려간다. 예상치 못한 일, 불행의 옷을 입은 일이 가끔 벌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경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그리고 그 너머, 그 너머, 또 그 너머에는.....?' (-9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