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알고 있다 - 꽃가루로 진실을 밝히는 여성 식물학자의 사건 일지
퍼트리샤 윌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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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粉學... 도대체 뭘까? 꽃의 성분을 조사하는 학문일까? 이 책의 말을 빌리자면 '먼지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그래서 한번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화분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리도 많은 분야에 관여를 한다는 말인지. 꽃가루의 형태나 그에 따른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 기초라고 한다. 유적지의 흙에 함유된 꽃가루를 연구해서 당시의 식생이나 고기후를 판단하기도 하니 고고학에도 응용되는 학문이다. 삼림의 변천과정, 나무의 우량 품종 교배나 품종을 개량하는 연구를 하기도 하며 식물의 연구나 지층중에 포함된 꽃가루나 포자 화석을 이용하여 지질학을 연구하기도 한다. 정말 놀라웠다! 게다가 그런 모든 것을 이용하여 범죄수사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니... 저 많은 분야의 이야기가 이 책속에 담겨 있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속에 그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게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긴장감 넘치는 범죄현장을 쫓아다니며 시원하게 해결하는 그런 책을 원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조금 인내심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낯선 분야라서인지 조금은 호기심도 발동했다. 이 책에는 그다지 많은 사건이 실려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진다.

지은이 퍼트리샤 윌트셔는 영국의 식물학자, 화분학자이자 고고학자로 법의생태학의 선구자다. 어린시절 뜻하지 않게 크게 화상을 입고 고생하기도 했으며 기관지염과 폐렴을 앓아 병약했던 까닭에 많은 책과 백과사전 전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어린 딸을 잃었으며 자신이 자연과 함께 살아갈수 있도록 항상 곁에서 돌봐주던 할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한마디로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살아온 삶이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녀가 그 광범위한 분야의 학문을 하는데 거리낌없이 다가설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에서 미생물과 일반생태학을 강의하기도 했고 환경고고학자로 영국 전역을 누비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범죄 사건의 증거 분석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법의학자로 살게 된다. 수많은 사건을 접하며 때로는 무고한 사람의 누명을 벗겨주기도 하고 충분한 증거를 찾아내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이 책은 바로 그녀가 겪은 수많은 사건중 몇 건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같은 이야기들이 모두 실화라는 게 경이로울 뿐이다.

세균과 균류가 가까이 오지 않는 한 꽃가루와 포자는 수천 년, 몇몇 암석 안에서는 심지어 수백만 년까지도 견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고고학이나 생태학에서 과거의 환경을 재구성하고 주변 풍경의 변화를 알아내는 데 매우 가치 있는 수단이다. 식물은 인류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학을 했으며,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보면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158쪽)

범죄를 다룬 사건이라고하면 그저 쫓고 쫓기는 범죄자와 형사의 모습을 다루게 된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는 생략된 채.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인다. 인간이 자연속으로 걸어들어갈 때 자연은 많은 것을 준다. 꽃가루의 흔적이, 말라 썩어들어가는 낙엽 하나가, 포자나 균류의 여정이 그렇게나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다는 걸 지금까지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발을 내딛는 모든 길위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게 된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그 모든 흔적들이 결국에는 우리와 연결이 되어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일지라도 그림을 그리듯 말하여 준다는 것도. 운동화 바닥에, 스친 옷자락에, 잠시 닿았던 머리카락에, 머물렀던 곳의 흔적은 남겨진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렀다해도 식물의 포자가 말해주며 흙의 성분이 말해준다. 정말 흥미진진했다. 증거가 될 만한 소재들을 하나하나 훑어가며 채집하는 그녀의 손길이 마치 마법사의 손처럼 느껴졌다. 이런 마법사라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닐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폐단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힘들고 어려운 일,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보다는 편하고 쉬운, 그리고 빠르게 결과를 보고싶어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등한시되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책속에는 많은 꽃과 나무, 혹은 흙이나 균류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해결해나가는 많은 사건이 있다. 사건해결을 위해 자연이 내어주고 있는 부분들이다. 꽃과 나무에 관해 좀 더 천천히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다. 흙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균류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꼼꼼하게 한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힘겨웠던 자신의 과거마저도 지금을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지은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치 앞에서 조곤조곤하게 속삭였던 것처럼. 멋진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고대 문명 그리고 오늘날까지 열대우림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부족들은 그들 삶의 터전을 둘러싼 식물과 균류에 조예가 깊었으며 오늘날까지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많은 균류와 식물들이 찌는 듯이 더운 숲에 모여들었고, 향정신성 성분을 가진 이것들은 원주민 부족의 일상 속 일부가 되고 있다. 그리고 부족의 구조와 응집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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