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루션 맨 -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로이 루이스 지음, 호조 그림, 이승준 옮김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제목보다도 털북숭이 그림이 더 시선을 끌었다. 딱 보면 원시인인데 시계를 찼다. 게다가 그의 앞에는 구두도 한켤레 있다. 털옷을 입고 시계를 차고 구두를 신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듯한 그림인데 이 소설이 딱 그렇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즘의 언어로 우리 인류의 진화과정을 그려내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책을 읽기전에 아주 당연한 듯이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역시 인류는 진화론이지~. 시대를 초월한 원시인들의 진화 투쟁기, 라는 말에 백퍼센트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인류의 문명에 대한 과정을 되짚어보게 되었던 시간이다. 재미있었고 나름 알찼던 시간이기도 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한 원시인 가족의 삶으로 축약한 이야기다. 그들은 현생인류다.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고 배웠던. 인류는 언제부터 지구에 존재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으로 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에서 처음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주인공 에드워드의 가족과 그의 형 바냐, 동생 이안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그에 따라 아들 오스왈드, 어니스트, 알렉산더, 윌버, 윌리엄이 또하나씩 줄기를 쳤다. 원시인에게 무슨 저런 이름을?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라고 이미 말했다. 에드워드는 과학자다. 끝없이 꿈을 꾼다. 그리고 끝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에 반해 형 바냐는 자연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주의다. 요즘으로 치면 진보와 보수쯤? 여행가인 동생 이완으로 인해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의 변화를 가늠하기도 한다. 이안의 여행기속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오스타랄로피테쿠스와 인도네시아의 자바원인, 중국의 베이징원인을 만나게 된다. 이 역시 우리가 배웠던 대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화석을 떠오르게 한다. 그쯤되니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소설인지 조금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불을 얻기 전에는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던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인간이 불을 얻게 되는 이야기는 신화를 통해 자주 등장한다. 그 불로 인해 인간은 정말로 많은 것을 얻은 듯 하다. 인간보다 힘쎈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익힌 고기를 통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으며 따뜻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보낸 판도라를 아내로 맞이하며 결국 인간에게 불행을 안겨주게 되었지. 어찌되었든 에드워드의 가족들을 통해 인류의 변천사를 바라보는 건 흥미로웠다.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대화는 이미 원시인의 대화가 아니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한 걸음 나아가는 거라고. 어쩌면 이 걸음이 인류에게는 큰 도약일 수도 있어. 그런데도 이게 자연법칙에 어긋난다고?"... "왜냐면 네가 한 짓은 어딜 봐도 '자연'스럽지가 않거든. 너도 한때는 대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축복과 재앙을 겪으며 희로애락 속에 살아가던 소박한 아이였어. 완벽한 공생관계 속에서 살며 느리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함께 그냥 동식물의 일원이었던 거라고." - 72쪽 -

"그냥 조금 더 빨리 진화하는 거에 불과하다니까."...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 우선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르잖아. 원래 수백만 년이 걸려야 될 일을 고작 수천 년 사이에 하려고 난리치고 있다고. 만약 그 일이 진짜 꼭 필요하다면 모르겠다만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지구상 그 누구도 이런 말도 안되는 속도로 살아가지는 않아! 네가 진화라고 표방하면서 하는 짓은 실제 진화와는 완전히 달라. 그건 진화가 아니라 신세 좀 고쳐보려는 얕은 수작일 뿐이지." - 76쪽 -

"그 당시 인간들은 제 분수를 지키며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았다"...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다 멸종해서 화석이 됐어." - 199쪽 -

에드워드와 형 바냐의 대화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던 인류의 문명은 과연 옳았을까? 조금은 늦더라도 바냐의 말처럼 '자연'스러운 속도에 맞추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인간은 과거로 퇴행할 수도 있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지. 하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분명히 말해두지만, 우리 원시인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뿐이야. 바로 앞으로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우뚝 서고, 역사를 창조하며 당당히 문명을 이끌어가는 거지!" - 200쪽 -

여기서 잠깐 묻고 싶어진다.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래서 지금의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책띠에서 보았던 한줄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아버지를 잡아 먹었다, 라는. 어니스트를 포함한 가족들은 불의 발견 그 이상의 진보를 막기 위해 아버지를 잡아먹었다. 이 책은 전혀 코믹하지 않다. 1960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제목을 바꿔가며 6번이나 개정 출판되었다는 걸 보면서 10년뒤에 다시 이 책이 개정 출판된다고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 인간이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일까? 우리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을까? /아이비생각

자연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사실 잘 알 수 없거든.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유효한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6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