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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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물리-화학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이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합니다."

"오늘 누려도 되는 즐거움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아요."

"개인이 감정을 느끼면 집단생활이 비틀거려요."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고통을 겪는 게 더 나은 선택이겠지."

"우린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지극히 간단하게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어. 이단은 단순히 한 개인의 삶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동시에 위협해서 사회 자체를 공격하는 격이야. 그래, 사회 자체를 말이야."

"우린 사람들이 옛것에 끌리는 걸 원하지 않아요. 우린 그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항상 과학이 최고라는 말을 하는대요. 그건 최면 교육의 표어입니다."

"신은 기계와 과학적인 의학과 보편적 행복과는 병립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 문명은 기계와 의약품과 행복을 선택했어요."

"문명은 숭고함이나 영웅성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개념들은 정치적인 비능률성의 징후들이죠."

"사람들은 人性의 절반쯤은 병 하나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 있어요."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 원하지 않는...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거운...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연 그런 세계를 신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멋진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일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라는 한 줄의 문장을 보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 昨今의 세상에서 그것은 인간이 모든 것을 바쳐가며 쟁취해야만 할 의미처럼 되어버린 듯 하다. 삶의 話頭랄까? 그런데 저 한줄의 문장처럼 인간이 만일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정말 재미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 행복이란 말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자신이 만든 올가미에 자신이 걸려든 것처럼.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 시대에 이렇게까지 앞서나가는 세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작품이 조지 오웰의 <1984>였다. big brother에 의해 모든 것이 감시되는 사회. 하지만 소설이 곧 현실이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꿈의 나라를 유토피아라고 한다면 지독히도 어두운 현실을 그려내는 걸 디스토피아라고 한다는데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고 있는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인 듯 하다. 신기하게도 <1984>나 <멋진 신세계>에서는 가족이란 의미의 공동체가 보이지 않는다. 태어남과 죽음까지 길들여지는 과정속에서 인간성이나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긴 채 삶의 여정속에 머문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멋진 신세계>가 그리고 있는 세상이다. 인간을 '맞춤형'으로 제품을 찍어내듯이 대량 생산을 하고,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들이 태어난다. 자신의 삶에 어떠한 의문조차 품을 수 없도록 끝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세뇌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는 존재가 하나 나타나고, 그가 이끄는 대로 시선은 야만인 구역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야만인 구역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딱 지금의 우리라는 것이다.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야만인 구역에서 원래 신세계에 살았던 여인과 그 여인의 아이를 만나게 되고 아이의 아버지가 신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눈치 챈 그는 여인과 아이를 데리고 신세계로 돌아온다. 미래에서 과거로 갔고, 다시 과거에서 미래로 돌아온 셈이랄까? 이쯤에서 살짝 의문이 든다. 작가가 진심으로 보여주고 싶어했던 건 어떤 모습일까? 재수없으면 2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말이 떠도는 지금, 늙지도 않고 정신적 외로움도 느낄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을 즐기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혹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은 형태의 국가는 공산주의라는 말을 하는 이도 있다. 사실 유토피아라는 말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유토피아>라는 작품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 혹은 사회주의인 듯 보여진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인간의 욕구와 수요를 억제하고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가 말하는 멋진 신세계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야만인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모습속에는 인간성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처절한 몸부림이 보여지고 욕망과 이성은 끝없이 싸운다. <멋진 신세계>라고 말은 하지만 그 안에서도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순이다. 아무래도 인간의 운명속에서 모순은 피해갈 수 없는 길인 모양이다. <멋진 신세계>는 1932년에 발표되었고, <1984>는 1949년에 발표되었으며, <유토피아>는 자그마치 151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사는 모습은 똑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는 것일까? 인간은 또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행복의 의미를 어디에 숨겨두고 이렇게 찾아 헤매는 것일까? 혹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유토피아는 아닐까? /아이비생각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에 없다는 것이지, 결코 실현될 수 없거나 발견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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