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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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전만 해도 식사시간에 말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대화가 식사시간에 이루어진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밥을 먹으면서 말을 한다는 건 예의없는 행동이었으며 쩝쩝거리거나 소리를 내는 것 또한 예의없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그 매너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예의나 예절이란 말의 의미와 같을까? 물론 사전에는 예절을 영어로 manner라고 한다고 나와 있지만 뜻밖의 말도 보인다. manner의 어원은 이탈리아 어의 마니에라로, 개성적인 양식이나 필적을 의미함. 13~15세기의 프랑스 궁정 문학이나 이탈리아에서 '매너'라는 말은 보편적인 인간행동과 예술양식에 사용되는 말로서 영어의 '스타일'이라는 단어와 유사한 뜻을 갖고 있었음. 매너라는 말은 18세기까지는 원뜻 그대로 쓰이고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개성적 양식에 대신하는 ‘아류(亞流)’의 뜻을 내포한 모멸적인 말로 쓰이고 있음. 간혹 들려오는 매너리즘이라는 말이 그런 의미였던 모양이다... 각설하고 이 책은 그 매너라는 형식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전통>이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나름대로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기득권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는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매너라는 형식의 뒷면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신사의 품격처럼 여겨지고 있는 first lady는 문 뒤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암살자들의 방패막이로 여성을 먼저 앞세웠던 것이 시초였다. 위생관념이 없었던 시절, 창 밖으로 버려지던 똥이나 오줌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양산을 쓰기 시작했다. 그 더러운 오염물의 냄새를 조금이라도 없애기 위해 향수가 만들어졌으며 오염물을 묻히지 않기 위해 힐을 신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양산과 향수와 힐이 멋쟁이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기사라는 이름으로 남자들만의 세상이 펼쳐지던 중세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사회계층에 따라 매너가 뜻하는 바가 달랐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유럽뿐일까?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많이 보여지고 있는 까닭이다. 기득권층은 자신이 마치 다른 존재인양 여러가지 예절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지금 명절마다 치루는 그 제사형식도 그렇게해서 태어났다. 세상이 변하면서 그들만의 예절인 듯한 형식이 일반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다 남의 제삿상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그만큼 씁쓸한 느낌을 깔고 앉은 형식들이 많다는 말일 터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강하게 다가온다. 매너는 과연 누구를 위한 형식인가.

 

우리는 흔히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거나 관계를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昨今의 '밥 한번 먹자'는 그저 스치듯 뱉어내는 형식적인 말일 때가 많은 듯 하다. 그만큼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어려워졌다는 뜻일까? 아마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두려워진 현실 탓이 아닐까 싶은데 혼자만의 생각일까?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걸로 어떤 관계를 돈돈하게 만든다는 게 어려워진 세상이다. 9장에서 보여지는 디지털 중세시대의 이야기는 참 씁쓸하다. 사람들은 이제 SNS 공간에서 허세를 떨고 서로를 유혹하고 행패를 부린다. 중세 기사들의 무절제한 태도가 또다시 만개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중세법은 부활하지 않는거지?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과학과 예술은 인간의 자존심과 명예욕만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인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루소가 보기에도 지금의 모습은 '시대의 인간성이 계몽시대 이전으로, 즉 소수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중이 선동되었던 종교전쟁 시대의 수준으로 퇴보한 증거라고 여길수도 있다'는 말은 참으로 놀랍다. 인간이 매너를 통해 자신이 동물과는 다른 존재라는 걸 증명하고자 애썼다는 말은 공감할 수 없다. 동물과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인간을 상대로 너랑은 다른 존재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쓴 것 같아서. /아이비생각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난 뒤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좀 더 조심히, 그리고 절제하며 대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국가 권력의 중심, 즉 궁궐에서부터 확연하게 나타났다. 궁궐 사람들은 정확한 예법에 통달해야만 했다. 엄격한 궁중 에티켓이 만사를 규정했다. 궁궐에서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그 에티켓에 통달하는 것이었다. '에티켓'은 원래 프랑스 궁궐에서 입장을 허가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름표를 뜻하는 단어였으나 점차 '사회가 허용한 태도'를 일컫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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