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이야기 길 따라 걷는 시간 여행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3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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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희우루에서 관물헌을 올려다보면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보인다. 고종의 글씨라고 한다. 누구는 그저 어린 시절에 쓴 글씨라 하고 누구는 13세, 15세때 쓴 글씨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로 보면 어렸을 때부터 한자를 배우고 익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 글씨를 두고 이러니 저러니 말이 나온다는 건 좀 그렇다. 지난 시절의 한 단면을 이 시대의 시점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추사 김정희가 썼다는 봉은사의 ‘판전(板殿)’이라는 현판을 두고 이러니 저러니 말들을 한다기에 하는 말이다. 이 책은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라는 시리즈물이라는데 그 전편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어떤 형식으로 쓰여졌을지 어느정도는 짐작하게 된다. 마치 답사지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찾아갔던 곳에서 그와 유사한 것들도 함께 들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랄까? 경기도의 문화유적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자못 진지해진다.

 

여주부터 시작했다. 여주하면 일단 신륵사가 있고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이 있고 명성황후의 생가가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오래전 남한강을 따라 폐사지 답사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참 신비로웠었다. 선정비에 깃든 목민관들의 빛과 그림자편을 보면서 답사지에서 보았던 그 많은 碑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적인 이순신장군의 모습에 감동한 군졸과 백성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추모비를 세웠으니 그것이 '타루비'다. 채 1미터도 안되는 작은 비이지만 그 안에 깃든 마음이야 크기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墮 떨어질 타, 淚 눈물 루'라는 말이 절로 숙연케한다. 돌에 이름을 새기려 애쓰지 말라 저자를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바로 선정비, 라는 글을 가슴에 새겨둘 이들이 참 많은 세상이다. 文字香 書卷氣 , 책을 많이 읽어 교양이 쌓이면 그의 글씨와 그림에서 문자의 향기가 나고 책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로,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는 말이다. 평생 벼루 열 개의 밑창을 내고 붓 천 자루를 닳게 만들었다는 추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고 있다.

 

역시 경기도 답사의 정점은 수원인가? 아니 수원이 아니라 정조대왕일게다. 오래전부터 실시해오던 정조대왕행차가 올해는 돼지열병때문에 취소가 되어 아쉬웠다는 이들이 많았는데 그만큼 성군의 자취는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 가슴에 훈훈함을 전한다. 화성축성 당시의 수많은 일화들, 행행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 했던 격쟁, 용주사를 통한 효심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 있음이다.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안타까웠다. 나라꽃은 그 민족의 역사성과 문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찌른다. 나는 과연 무궁화를 얼마나 알고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중국의 고전 <산해경>에 군자의 나라 한반도에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훈화초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산해경>은 기원전 3~4세기에 쓰여진 까닭이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한반도에 토종 무궁화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는 징표라는 말에 많이 부끄러웠다.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읽는내내 즐거웠다. 古則神也.. 오래된 것에는 신령스러움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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