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킬 - 이재량 장편소설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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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전세계적으로 4000종의 바퀴벌레가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바퀴는 10종 정도라고 한다. 언젠가 날아다니는 바퀴벌레때문에 식겁한 적이 있다. 이 놈의 바퀴와 한번도 마주쳐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바퀴벌레와 마주치면 어떻게 내려칠까? 휴지는 어디쯤에 있었지? 생각하면서 그놈과 눈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생각에 빠지면 이미 늦는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잽싸고 빠른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디 그뿐인가? 그 큰 몸으로 어찌 들어갔을까 싶은 틈새로 기가막히게 숨는다. 이 놈들은 죽을 때 산란관을 배밖으로 쑥 밀어낸다. 그러면 거기서 조그맣고 하얀 새끼들이 좁쌀처럼 바글거리며 기어나온다. 한번 생기기 시작한 바퀴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한다. 바퀴와의 전쟁... 이것은 정말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강박증. 더러움을 참지 못하는 강박증. 우리의 주인공 고광남씨의 부친이 그랬다. 더러운 걸 조금도 용납하지 못했던 아버지가 너무 싫었던 광남씨는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고 있다는 걸. 그런 탓에 결국 아들을 아내에게 양보하면서까지 이혼을 하고 지방의 오두막으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혼자 깔끔하게 살던 호시절도 잠깐, 오두막 옆에 이층집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이사를 온 날부터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바퀴벌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읍내로 나간 광남씨의 눈에 띈 광고지 한장. '해충 구제 전문회사 (주) 올 킬'...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결국 서비스를 신청한 광남씨. '올 킬'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과연 바퀴벌레를 없앨 수 있을까?

 

"이놈의 세상은 참 더러운 것투성이다. 나는 그저, 순결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굳이 고광남씨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더러운 것이 참 많다. 하지만 그 더럽다는 건 온전히 인간의 기준일뿐이다. 참을만 한 것들도 많다. 단지 사람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질 뿐. 순결하게 살고 싶다면 아마 무균실에서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소설이 말하고 싶어하는 건 그런 관점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얽히며 살아가는 걸 빗대어 말하고 있다. 어느정도는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혼자 잘난척, 혼자 깨끗한 척, 혼자 똑똑한 척.... 할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이웃집과 함께 협력해서 없애야 한다는 그 말에 이웃집을 찾아갔지만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광남씨에게 회사가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하겠느냐고 물었고 결국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청한 후 이웃은 집만 빼고 사람도, 물건도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하룻밤새에 진짜로 주변의 모든 해충을 다 없애버린 것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3개월 후 신혼부부가 새로 이사를 오고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바퀴벌레로 인해 광남씨의 강박증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렇다. 무엇인가가 없다가 있으면 신경쓰이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하다. 그런 까닭으로 광남씨 역시 새로운 이웃이 반갑기도 하면서 은근 염려스럽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웃이 먼저 프리미엄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제 광남씨는 어찌될까?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찾아왔지만 어김없이 바퀴벌레도 함께 찾아왔다!

 

이 소설은 사실 배꼽잡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냥 배꼽잡으며 웃을 수 없다. 강박증에 사로잡힌 어리숙한 광남씨의 행동을 바라보면서도, 웃긴데 웃을 수 없는 해충박멸회사 직원의 말도. 단지 바퀴벌레와의 싸움일뿐인데 읽는 동안 긴박함과 서늘함이 느껴졌다. 문맥의 촘촘함은 새삼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전작 <노란 잠수함>에서도 맛볼 수 있었던 몰입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정한 기준의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그 많은 규칙을 만들어냈을까? 어찌보면 인간은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이나 법칙에 치이며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사물의 근본적인 이치를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단순하게 살아도 되는 것을 복잡하게 살고자 애를 쓴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아량이 필요하다.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물건이 되었든. 올 킬!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 당신도 신청하고 싶은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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