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철학자, 나무로부터 배우는 단단한 삶의 태도들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 메이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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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 나무, 나무... 아무리 여러번 불러봐도 질리지 않는 말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도 많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이왕이면 울울창창한 숲속의 나무라면 더 좋겠다고. 죽으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말했다가 남편과 한동안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만큼 나무가 좋다. 그러니 이렇게 나무의사를 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무한대로. 한창때는 산에 미쳐서 살았다. 틈만 나면 베낭을 짊어지고 산에 올랐다. 하지만 나의 산행은 정상을 오르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저 오르며 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좋았고, 나무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이 좋았다. 태풍이라도 지나간 후에 내게 보여지던 하늘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림으로 기억속에 자리한다. 그러다가 풀과 나무와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작은 식물도감을 베낭속에 넣고 다녔었는데.... 점점 파괴되어져가는 숲을 바라보면 왠지 서글퍼진다. 치유의 안식처가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사람은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 건강한 법인데... 하면서.

 

통의동 백송이야기를 듣고 이내 숙연해지고 말았다. 오래전 답사길에 그 백송을 보았었다. 나무가 쓰러진 후 분석해보니 1690년쯤 심어진 나무로 밝혀졌다. 놀라운 것은 일제강점기에 백송의 성장이 멈추다시피 했다는 거였다. 나무의 나이테는 환경이 좋으면 간격이 넓고 연한 색을 보이지만 열악한 환경이었다면 간격이 좁고 색이 짙어 나이테만 보고도 그 나무가 살았던 시절을 유추해낼 수 있다고 한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의 나이테 간격이 거의 변동이 없을 만큼 좁고 짙었다고 하니 그 나무가 받았을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었는지 알 수 있다. 문득 해미읍성의 회화나무가 떠올랐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교수목이라고도 불리워진다는 그 나무의 절절한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듯 하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순교자들의 목이 걸릴 때마다 나무는 그 가지를 한껏 움츠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 나무의 나이테가 어찌 되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세금을 내는 나무도 있다. 진짜다. 그 나무는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지금도 시골마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겠지만 당나무라는 게 있었다. 성황신을 모시는 성황당도 있었다.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 성황신이고, 그 마을과 마을사람들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곳이 바로 당나무앞이었다. 지금은 배척당하고 외면하는 민속적인 것들은 우리를 자연과 결부시켜 놓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이 책을 통해 昨今의 우리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버릇처럼 늘 하는 말이지만 문명의 발달만이, 과학적인 처사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아파트 사이에 나무 몇그루 심었다고, 개울 흉내를 내었다고 그것이 자연은 아닌 까닭이다.

 

세상에 함부로 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쓸모없이 태어난 존재 역시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이 책에서도 여러번 강조하고 있듯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하며 타인에게 얼마나 아픈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무에게서 배울 게 어디 한두개뿐일까. 책띠에 '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는 말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오지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 우리가 하는 걱정의 대부분이다, 라는 말이 스친다. 오늘을 충실하게 산다면 굳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일터다. 내려놓고 버려야 채워질 수 있다는 법정스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일게다. 그러나 우리는 교과서같은 말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자연을 벗하며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아마도 그런 말들이 일상이 되지 않을까? 나무를 심을 때도, 나무를 옮길 때도 나무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하긴 옛날에는 나무를 자를 때도 예를 치렀었다. 이나무, 저나무, 먼나무... 정말 많은 나무의 이름을 불러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진심으로 나무를 대하고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나무에 대해 다시 배운다. 그리고 나무를 더 사랑해야지, 한다. /아이비생각

 

어린 전나무는 다른 큰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 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33쪽)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튼실한 열매도 볼 수 없다.

내처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38쪽)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은 죽어간다. 햇볕이 바닥까지 닿지 않으니 온기가 부족해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울 재간이 없다. 어린 나무와 풀꽃, 그들과 함께하는 작은 곤충들이 살아갈 공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숲은 결국 희망이 없는 불임의 땅과 다르지 않다.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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