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역사
에밀리 프리들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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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뭐든 다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거라고 말하는 어른들이 밉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고나면 진짜로 뭐라도 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나를 보호해주는 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이제 어른이 된 내가 이해하게 되고, 나 역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공연스레 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모든 것이 내가 생각했던대로 풀리는 건 아니었다. 어른이 되고나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던 나의 철없음을 인정해야만 했고, 어른이 되고나니 세상일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에 대해서도 여러번 뒤돌아보아야만 했다. 이 책은 아마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 듯 하다.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둡고 칙칙하다. 열네살의 소녀 린다가 삶의 정체성을 알아가기 위해, 혹은 성에 대한 자신의 의식에 당혹해하면서 나이가 들어가지만 그렇다고해서 린다에게 어떤 확실한 변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열다섯살이 되고, 열여덟살이 되어도 린다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삶속에서 살고 있다.

 

모두가 떠난 히피공동체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살고 있는 린다의 부모. 그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채 자라는 린다. 책을 읽으면서 말로만 들어왔던 히피문화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1960년대 지지부진한 베트남 전쟁의 상태와 불안한 사회의 영향으로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성을 중시하고 물질문명을 부정했던 운동이 '히피'라고 한다. 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의 생활방식을 모방하여 자유분방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떠돌아다니는 공동생활과 같은 상징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히피문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 듯 하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린다의 부모 역시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린다 역시 학교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혼자서 숲속을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레오와 패트라가 네살인 아들 폴과 함께 이웃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린다는 폴의 베이비시터가 되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린다에게 다가온 패트라와 폴의 모습은 린다에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만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종교(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종교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에 빠진 레오에 의해 아무런 보호조치없이 병을 앓던 폴이 죽게 된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의 삶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 그리고 세상이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도 불합리하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된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외로워지긴 했지만 이제 성인이 된 린다는 그 숲속을 떠나 도시에서의 삶을 살고 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의 뇌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정도의 오류를 보인다는 말이다. 자기자신을 지키고 싶은 보호본능이 앞서기 때문일까? 결국 한통의 전화를 받은 린다는 다시 자신이 자란 미네소타 북부 숲속의 오두막으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여전히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풀리지 않는 숙제때문에. 친구 릴리와 그리어슨 선생님은 정말 어떤 관계였을까? 레오와 패트라가 정말로 폴을 죽인 것일까? 엄마는 나를 낳은 엄마였을까? 솔직히 어떤 기법으로 쓰여진 소설인지 잘 모르겠다. 성장소설인지 추리소설인지. 책의 제목으로 쓰인 <늑대의 역사>는 또 어떤 의미인지. 다섯그루의 나무가 서로에게 가지를 뻗어 늑대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책표지의 그림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어떤 말이라도 걸어오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어딘가에 갇힌 것처럼 답답한 느낌을 너무 강하게 전해받았다.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때문인지 몰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지만 린다의 삶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다. 그녀에게 봄이 오기는 올까? 어찌된 일인지 마지막에 보이는 옮긴이의 말이 작은 위로가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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