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인간의 탄생 -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발견한 에로틱의 미학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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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주제에 따라 무협, 판타지, 추리, SF, 로맨스 등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분류되기도 한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사람들이 각각 선호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인 삶을 바탕으로 그려지는 작품에 자꾸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왜냐하면 그 소설속에서 잠시 사람들의 삶과 사회의 현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시대의 모순과 갈등을 한편의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탄복하게 된다. 이 책은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위해 쓰여졌지만 독일의 문화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 배려한 책이라고 한다. 크게 3부로 나누어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문학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사회적인 변화에 맞게 변해가는 문학이나 예술의 형태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독일은 주변의 강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혁명이 늦게 시작되었다. 가내수공업에서 공장의 기계공업으로 생산의 체계가 바뀐 것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830년대부터 방직업에서 시작된 독일의 산업화는 1850년대 석탄이나 철강, 철도로 발전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1871년 통일 이후에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은 공업도시 주변의 근로자와 빈민계층의 교육과 환경문제를 불러왔다. 현실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에 의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의료보험(1883), 산업재해보험(1884)이 이때 만들어져 사회보장제도의 시작을 알렸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세계최초의 사회보장제도였다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종교와 철학에서 진리를 찾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많은 것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명제에서 사실에서 출발하여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실증주의가 출현했다.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러니 19세기에 등장한 다윈의 진화론이나 멘델의 유전학은 전통적인 관습에 얽매여 있던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거센 반발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진화론은 당시의 문학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적인 윤리에서 언제나 통제되어야만 했던 성과 성에 대한 욕망이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자연적 특성으로 묘사되었다. 책에서 '노벨레(Novelle)'라는 말이 많이 보이는데 찾아보니 그 말은 '새로운', 또는 '새로운 사건, 색다른 일'을 뜻하는 것이었다. 독서의 중심이 귀족에서 시민계층으로 이동하면서 출판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문학작품의 대량판매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출판시장이 상업화와 통속화라는 틀에 갇혀버린 탓에 작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결국 젊은 작가들은 생존의 위협앞에서 예술적, 문학적 신념은 버려야했지만 다윈의 진화론이 불러온 변화에 맞춰 새로운 관념으로 격변하는 사회와 문화를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평범하거나 전형적인 등장인물을 통해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조화롭게 보이지만 자본가들에게 종속되어있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라거나 도덕적으로 타락해있던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현실속에서 진실이 얼마나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는지. 허울좋은 거짓이 어떻게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지. 극단적이거나 추한 것들에게서 진리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자연주의의 탈선이었다고 여기며 새로운 이상주의가 제시된다. 인지되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묘사했던 것들이 인물 내면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기전환기에 접어들어 문학의 중심이 객관성에서 주관성으로 이동한 것이다. 또한 세기전환기에의 문학작품을 통해 성과 문명의 대립을 볼 수가 있는데 문명화된 삶을 살수록 인위적인 규칙과 질서에 의해 인간의 성이 설자리를 잃는다고 보았던 그들이 성과 문명을 삶과 죽음의 대립구도로 발전시킨 것이다.

 

우리문학의 형태를 살펴봐도 시대에 따라 변화되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정치나 사회제도의 개혁, 새로운 교육관, 여성의 자유와 평등과 같이 시대적으로 변하는 상황에 맞추기도 하고 대중성이나 시장성을 지향하기도 한다. 교훈을 주기 위한 계몽소설이 성행하는가 하면 낭만적인 연애소설이 성행하기도 한다. 식민지시대와 같은 사회의 사실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하고, 그에 따라 변하는 사람들의 환경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와 같은 목적의식을 담은 작품이 다루어지기도 했고,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환경에 의해 변해가는 인간의 좌절과 타락을 그리기도 했다. 이처럼 문학의 형태는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가볍게 읽히지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흐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독일이 문학과 예술이 발달한 나라임에는 분명해보인다. 세계의 음악사에 등장하는 바흐나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등도 독일을 빛낸 인물이며 괴테나 그림형제도, 칸트나 헤겔도 독일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매년 10월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것만 봐도 독일의 출판시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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