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월 2 - 밥이 하늘이오
허수정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전에 유적지 탐방차 전라도지방에 내려갔던 적이 있었다.
전라도지역이라 하면 일단은 민란부터 생각나기도 하였고, 굳이 민란이 아니더라도
일제시대 수탈의 참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까닭이다.
전봉준 고택지를 둘러본 후에 봉기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였던, 그래서 그곳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던 말목장터 감나무 아래에서 누군가 물었던 것 같다.
여기에 서니 그 옛날의 함성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고사한 상태인지 고사직전인지 모를 감나무 아래에 서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니 우리가 느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차라리 외치고 싶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나는 차라리 묻고 싶었었다.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거냐고.
전봉준의 흔적을 따라 하루를 꼬박 희생시키면서까지도 나는 그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단지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그시절의 암담한 현실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악의처럼 차올랐던 기억밖에는...
동학이란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던 차에 내게로 온 책이었기에 내심 기대가 컸었다.
무엇이 무지렁이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종교란 것이 무엇일까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것들을 그야말로 불가항력적인
것들을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에게 의지하려는 것...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 가장 힘겨운 것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일까? 아니면 현실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힘겨움일까?
대체로으로 볼 때 지금의 종교적인 모습을 보면 현재보다는 내세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나중에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함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동학은 종교가 아닌것 같다.
그들은 살아있는 지금을 더 중요시 했던 듯 하다.
그들은 살아가야 할 현실속에서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듯 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는 말이다.
내 마음이 곧 당신 마음이니 누가 되었든 사람을 귀히 여기라...
남의 마음을 나의 마음과 같이 여기면 귀하고 천함이 없어지나니...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변해야 한다고.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달라진다고.
그래서 그들은 변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변했을까?
모든 것들은 먹고 사는 문제로 집결이 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토록 많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허나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세상 이치가 그렇게 말처럼, 혹은 이론처럼 다 이루어지고 다 보여질 수 있었다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감히 생각해 본다.
해월... 그라고 해서 현실과 관념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도 역시 인간이었음을, 결코 신이 아니었음을 ...
세상 모든 일들이 마음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어느 한사람만이 고결한 뜻을 갖고 있다고해서 모든 세상이 고결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한사람이라도 시천주한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는 이가 있다면,
타인과 자신의 마음 근본에 한울님을 인식하고만 있다면 결코 끝난게 아니라고.
단 한사람의 개벽..그건 곧 만인의 개벽이 된다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동학이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종교의 모습처럼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 들어 하나의 종교로써 자리를 잡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정말 살맛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마음을 비운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진 않다.
욕심을 버린다는 말 또한 그리 쉽진 않다.
모든 것을 그저 한울님의 뜻으로 여겨 오로지 순응하며 산다는 것 또한 쉽진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채 내세만은 중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와 이웃의 행복이었을 뿐.
"열석자 주문만 외우면 저놈들의 총구에서 총알이 아니라 물이 쏟아지고
설혹 총알이 날아온다 하더라도우리 몸을 비껴갈 뿐인데,
아, 이런 싸움이 뭐가 걱정이냐? 태평한 게 당연한 거여!"
시천주 조화정...소리는 허공속으로 힘없이 스러져 갔다.
"이,이럴수는 없는 겨. 왜, 총알이 비껴가지 않는 거야, 왜....!"
현실은 그렇게 그들을 비껴가지 않았다.
그토록 마음을 다해 의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배경을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었던 동학의 모습.
시작은 그게 아니었지만 점차 그들에게 초심을 잃게 만드는 일들이 생겨나고
그 모습속에서 찾아낸 건 그들 모두가 살아가는 현실이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 또한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앞서 달려가는 이가 되라는 채찍을 받았을 뿐이다.
변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런가 싶다.
해월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선각자라는 사람들은 일찍부터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그들은 앞날을 점칠 수 있었을 게다.
변해야 한다는 말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배우고 익히게 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눈을 뜨라는 말이었을게다.
단 한사람만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존중하는 이가 있다면 끝난 게 아니라던
해월의 탄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주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게 남는 느낌표 하나가 있다면,그것은 안타까움! 이었다...
이어달리기라는 운동을 생각한다.
맨 처음에 달려야 할 사람의 마음과 두번째로 바톤을 이어받아 달리는 사람과,
세번째 혹은 맨 마지막을 달려야 할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가 다르다.
첫번째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아 달릴 수 있다면
그 게임은 이미 끝난 게임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첫번째의 마음이 제대로 이어진다는 걸 보장할 수가 없으니..
그리하여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우리는 수도 없이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으니..
첫마음이 마지막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