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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가 길다.
아니 하루가 너무 짧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하루는 너무 길고
막히는 것 없이 잘 풀리는 것 같은 하루는 너무 짧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너무 짧았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고 그는 말하며 잠이 들었다.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지만
그에게는 희망이란 새싹조차도 돋아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에겐 나름대로의 행복한 하루가 있었다.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꼭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꿩 구워 먹은 소식이 되기가 일쑤고, 그렇지 않으면 '이유없음'이라고
퇴짜를 맞을 게 뻔하거든" <241쪽>
이렇게 그에게는 희망이라는 게 한낱 불필요한 단어에 불과했다.
오로지 눈뜨며 맞이해 눈감으며 보낼 그 하루만이 존재하고,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낼 수 있느냐만이 그에겐 중요했을 뿐.
작가 자신이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했다.
일종의 사상범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런 경우 대게는 어떤 자가 실권을 쥐는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작가 역시 좋은 세상과 나쁜 세상속을 한꺼번에 살아낸듯 하다.
하지만 그는 지배권력에 의해 힘없이 짓밟히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냈던 것 같다.
강제수용소라는 특이한 배경속에서도 어설프게 다가오는 유머와 웃음이 참 서럽다.
단 하루라는 시간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다.
결코 편안할 수 없는 배경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숨이 가쁘지 않았다.
그만큼 처절하게 안아들었던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크던 작던 어떤 공간속에서도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다.
어찌되었든 살아남아야 하는,
아니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수용소의 하루.
환경적응력이 가장 빠른 동물이 사람이라고 했던가?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모습은
울고 싶어도 소리를 낼 수 없는 목울대를 가진 것 같아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차마 소리내어 울 수 없는 그 처절한....
숨막힐듯한 강제수용소내에서조차 사람과 사람의 간격이 벌어진다.
제각각 살아왔던 길이 다르고, 생각하는 길이 달라도
물에 기름뜬 듯 결코 섞일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나 하나때문에 있어서는 안될 그런 일들만큼은 피해가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안다. 서로가 이미 하나의 끈으로 묶여진 공동체라는 것을.
그러나 서럽도록 서글픈 공동체라는 것도 그들은 알았을까?
고전읽기에 도전하면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을 살아낸 철학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변하지 않는 세상살이의 법칙들이 때로는 서럽게 다가오기도 하고
변할 수 없는 세상살이의 법칙들이 때로는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한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나에게 시간이라는 것이
혹은 내가 살아내야 할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만나질 의미들이
너무도 크게 다가와 나의 어깨를 흔들어주었다.
어디든, 무엇을 하든 모든 사람들이 처해 있는 곳마다 희망은 있게 마련이다.
희망이란 것이 너무 커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 희망이란 것이 너무 작아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더듬어 찾지 않으면 찾아지지 않는 희망은 언제나 우리 주변을 맴돌뿐이다.
함께 살아내야 할 우리의 세상.
그래서 혼자서는 감당해내지 못하는 그 희망의 무게.../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