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새 글이 만들어지면 10년 안에 세상이 바뀔 것이다"
"이제 글은 사대부의 것이 아니다. 학문 또한 사대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만 익히면 세상천지가 학문하는 자들로 넘쳐날 것이다.
 종놈들은 시종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고
 장사치들은 상학을 한다고 할 것이며 갖바치들은 피혁학을 한다고 나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지렁이 농군이 송사에서 이치를 따질 것이고 세상의 모든 자들이
 자기 이익을 주장하고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문하는 사대부가 갈 곳이 어디겠느냐"

153쪽에 나와 있는 글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그 무엇을 느껴야 했다.
지금까지도 저놈의 유교적인 사상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학문이, 깨우침이 어째서 몇 %의 인간들만을 위해서 생겨난 말이라더냐?
억지스러운 비교같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진즉에 대원군이 이 나라의 문을 열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우매한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금보다는 훨씬 앞으로 나아가 어쩌면 이 세상을 호령하는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경학과 사장의 이치가 만백성에게 고유되는 새로운 세상,
모든 백성이 현학이 되고 원하는 자는 누구나 학문할 수 있는 꿈의 나라.
그 나라에서는 관념보다는 실용이, 이론보다는 실제가,권위보다는 실력이,
신분보다는 능력이 우러름을 받을 것이었다. <197쪽>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형식에 치우쳐 겉치레에만 매달리기 보다 먼저 실용을 따지고,
말만 앞세우며 탁상공론에 치우쳐 살기 보다는 실제의 상황을 먼저 직시하고,
내노라하는 이름과 명패보다는 실력이 우선이 되며,
신분보다는 각자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진즉부터 꿈꾸어 오신 분.
한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고통을 견뎌내면서 오로지 백성만을 위해 존재하셨던 분.
그 분이 우리의 세종대왕이셨다는 사실에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시한번 경의을 표한다.

백성은 무지할수록 다루기 쉽다고 했는가?
이 책의 밑바닥을 곰곰히 살펴보면 작금의 정치상황과 다를 게 하나도 없음이다.
백성은 깨어 있으나 아직 겨울이라고 우기며 잠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군상들의 모습.
단지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일뿐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도 와닿는 느낌들이 많았다.
자신만의 우월성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최만리라는 인물의 생각이 너무 안스러웠다.
끝까지 한글창제에 대한 반대 상소를 준비하던 최만리의 끝없는 아집을 보면서
대종손이었으며 또한 대종가집의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신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 수많은 형식과 겉치레에 눌려 숨한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신 내 어머니의 삶을 생각했다.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나도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우겨봤지만
지금은 나도 맏며느리로 살아가고 있음을 어쩌랴.
유교적인 것들에 대한 나의 반감은 사실 엄청나게 크다.
하지만 유교적인 것들을 다 반대만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옛것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은 유지하되 시대에 맞지 않은 부분들을
현실에 맞게 고치지 못하고 목소리만 높이는 융통성의 부재가 화가 날 뿐.

<뿌리깊은 나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리고 한국형 팩션이라는 소개글을 보았을 때
나는 정말이지 읽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어쩌지 못했다.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초반부에서 느껴졌던 밋밋함을 중반부까지 고스란히 안고 가야했지만
서서히 밝혀지는 세종대왕의 그 넗으신 뜻을 펼쳐나가는 부분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글의 짜임새를 논하기에 앞서 다루어진 소재가 너무도 이채로웠던 까닭이다.
매년 10월이 오면 공휴일로 책정되지 못한 9일 한글날을 보면서 못내 아쉬움을 숨긴다.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이 공인된 한글을 정작 쓰고 있는 우리는 중요성을 모르고 있는가 보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더불어 인터넷 세대들이 이런류의 책을 더 많이 읽어보았으면 하는 혼자만의 욕심을 가져본다.

강추!!!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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