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깊고 깊은 정글속에서 살고 있는 커다란 나무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 나무로조차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다시 태어난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되었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존재감을 갖게 될 수 밖에 없다. 스스로에게든, 타인에게든.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울었다. 영혜였다가 인혜였다가 때로는 영혜의 남편이었다가 인혜의 남편이었다가. 종잡을 수 없는 감정때문에 격해지기도 했고, 알 수 없는 감정때문에 슬퍼지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강력한 충격을 받았을 때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질환을 우리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라는 것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기보다 오랫동안 숙주의 몸안에 또아리를 튼다. 그리고 때를 기다린다. 그 때가 다가오면 서서히 또아리를 풀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의 숙주였거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존재들조차 트라우마의 확실한 정체를 인식하지 못한채 삶을 영위한다. 그리고 쉽게 말한다. 자신이 배운대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아주 짧은 근거를 제시하며.

 

사람들은 틀에 가두고, 틀에 갇히는 걸 좋아하는 것일까? 채식주의자.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오해와 질타를 받았던 영혜에게 그들은 채식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워버렸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얄팍한 틀에 영혜를 가두고 어째서 남들처럼 살지 않느냐고 손가락질을 했다. 단 한번도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 한번도 영혜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를 살펴보려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이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것만 각인시키고자 했을 뿐이다. 강제로 벌려진 입속으로 고기 한 점이 들어왔던 순간 끝내 손목을 그어야 했던 영혜를 애처롭게 바라봐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긴 사연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만.

 

많은 심리학 서적이 있다. 그리고 심리학의 대부분은 트라우마를 다룬다. 그것도 어린 시절의 나, 혹은 내 안에 있는 나와 마주서기를 요구하면서. 그러나 그들 역시 너무나도 통계적인 관찰만 하고 있을 뿐이다. 나만큼은 너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왜일까? 그들 역시 정해놓은 틀속에 가두려고만 할 뿐이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한 책이나 설문조사 따위는 이제 믿지않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내내 너무 아팠다. 마치 그런 부류의 서적에 방점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까지 들여다볼 줄은 몰랐기에. 이렇게까지 깊은 속울음을 드러낼 줄은 몰랐기에. 다같이 힘들었는데, 너만 힘들었던 것도 아닌데 어째서 너만 그렇게 저 멀리로 도망가고 있느냐던 인혜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처럼 나에게 들려왔다.

 

이 작품은 영국의 맨부커상을 받았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문학상으로 꼽힌다. 1969년에 처음으로 제정되어 영국연방 국가에서 출간된 작품을 쓴 작가에게만 수여되었으나, 2013년부터 전세계의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번역가의 역할이 클 것이다. 그러니 작가와 번역가에게 동시에 수여된다는 점도 짚어줘야 할 것 같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도 수상작이다. 상금이야 얼마가 되었든 우리의 작가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건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감히 내 짧은 소견으로 책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생각에 미뤄두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아야 할까 망설여진다. /아이비생각 (책표지의 그림이 너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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