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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연애편지
김다은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저쯤에 허름한 건물이 하나 있다고 치자.
그래서 나는 그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건물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열어보기로 한다.
빼꼼이 열린 문틈으로 바라본 건물안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왕 문을 열었으니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작정을 한다.
안으로 들어가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내려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한발짝 내디뎌 본다.
그 순간 저 아래쯤에서 살풋 일렁이는 빛이 보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하나씩 계단을 밟고 내려갈때마다 긴장감이 인다.
촛불을 켜놓은 것처럼 나의 움직임에도 미세하게 일렁이는 빛의 환영을 느낀다.
뭐지? 내 몸을 조여드는 이 느낌은?
긴장감에서 풀려나지 못한채 나는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다.
정말이지 책장을 한장씩 넘길때마다 나는 속으로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다.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서간체의 소설이란 말에 은근한 유혹을 느끼게 된 것은 사실이다.
어린시절부터 편지쓰기를 좋아하던 내게 손짓을 했던 것은 서간체라는 말이었다.
이름도 몰랐던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고나서도 이 책을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단순히 이 책을 선택해야만 했던 어떤 동기가 나에게 있었던 것 뿐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나를 놀라게 했다.
짜여진 구성과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흐름이 나의 감정세계를 파고 들었다.
편지글로도 이런 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하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화가 났다.
우리의 문학계에서도 이렇게 멋진 글을 만날 수 있었건만
편식을 하던 나의 책읽기 습관에 화가 나기 시작했던 거다.
프리랜서 기자가 떠나는 그 미지의 여행길에 동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 내밀한 사람에게-를 읽어내려가던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단순한 편지 한통으로 얽혀지는 인연의 고리들.
그리고 그 편지 한통으로 생겨나던 수많은 설레임의 순간들.
죽음으로 끝을 맺어야만 한다는 모티브가 단 한통의 편지였다는 것.
하지만 얽혀진 그 인연의 고리들속에서 느껴지던 사람들의 욕망이 품어대던 냄새.
그 악취로 인해 편지가 안고 있었을 향기로운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초등학교라는 말보다 국민학교라는 말이 더 정겹다.
교사를 하는 오빠를 따라 전학을 왔던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생각이 난다.
그 친구의 집은 평택이었고 우리집의 바로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친구는 방학이 되면 평택집으로 내려갔고 방학내내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았었다.
그 시절의 힘겨움과 아련한 그리움들을 그 친구와 편지로 이야기 나누었던 것 같다.
참으로 무던한 친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30년을 훌쩍 넘긴 세월을 떠나보냈는데도 내 기억속에 뚜렷하게 남겨진 친구의 이름.
아마도 마음을 주고 받았었기에, 혹은 내 아픔을 말없이 안아주었던 친구였기에
그토록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 친구와 단순히 대화로써 아픔을 나누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랜시간을
내 기억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편지의 힘, 말의 힘이 아닌 글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이후로 나는 그토록 절절한 편지를 써본 기억이 없다.
말그대로 이상한 연애편지 한통으로 시작되어진 이 책속에서 많은 것들을 만난다.
평소 책속에서 간접적으로 거닐어 보았던 프랑스의 풍경들조차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종교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들이 어울어진 마당도 펼쳐져 있는 듯 보인다.
작가의 후기글에서 만나지는 편지글의 형태들은 나에게 새로운 눈뜸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왜 서간체 형식의 글을,
그것도 추리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을까?
어쩌면 인터넷속에서 흉물스럽게 떠다니는 부유물같은 우리의 존재의식을
깨워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그 무엇을 하나씩 잃어버리면서도
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아니 어쩌면 그 사실을 부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아주 따끔하게 충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 한통의 편지, 아니 단 몇줄의 글귀속에 담겨진 진심어린 마음 한조각으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설레임을 되찾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덕분에 나는 이미 오래전에 떠나왔던 내 기억의 모퉁이를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보고픈 얼굴과 이름하나를 가슴속에 되새김질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정말 멋진 책이 아니었나 싶다.
단 한순간도 책에서 손을 떼고 싶지 않았을만큼.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