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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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경찰이 사건을 발표하며 했던 말,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다. 그 때는 그야말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거리를 휩쓸었다. 그 때의 그 현장에는 나도 있었다. 학생 시위대들이 전철을 점령하기도 했고 거리의 보도블럭을 뜯어내 던지기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전철을 세우고 점유했으나 학생들은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한쪽으로는 시민들을 인도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혼란스러운 정치의 시대였다. 그 때의 인물이 바로 박종철과 이한열이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집권층의 공개적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고, 군사적 통치에서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냈다. 지금의 우리는 그들을 열사 혹은 시민운동가라고 부른다. 30년 후, 그 시대를 그린 <1987>이란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의 혼란스러움은 여전하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지나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할 상황이 나타났다. 오늘날 중국의 젊은 세대 가운데 1989년의 톈안문 사건에 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설사 아는 사람이 있다해도 아주 모호한 반문만 던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두시위에 나섰다면서요?" (-36쪽) 지금의 대한민국 젊은세대는 다를까?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누군가가 앞장을 서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하나 역시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後代는 先代의 희생으로 얻어낸 사회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위화는 근현대 중국의 역사를 열 개의 단어로 말하고 있다.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가 그것이다. 중국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이지만 국가가 과연 인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왠지 씁쓸한 느낌을 전해준다. 위화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발치사)로 일하다가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으로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 <가랑비속의 외침>,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 <형제>등이 있다. 자신의 피를 팔아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허삼관 매혈기>는 중국의 힘겨운 현대사를 보여준다. 이 작품으로 위화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광두와 송강이라는 배다른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형제>에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던 역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소설이지만 <형제>로 다시한번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도 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의미에 공감하게 된다. 나는 매번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 작품을 따라 어디론가 갔다. 겁 많은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그 작품의 옷깃을 붙잡고 그 발걸음을 흉내내면서 시간의 긴 강물 속을 천천히 걸어갔다. 아주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위대한 작품들은 나를 어느 정도 이끌어준 다음, 나로 하여금 혼자 걸어가게 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 작품들이 이미 영원히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4쪽) 작가의 독서 이력을 설명한 글이다. 독서를 하면서 저런 느낌을 갖는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전 한 TV프로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이렇게 말했었다. 작가는 어떤 것을 숨겨놓고 그것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위대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나를 이끌어준 다음, 혼자 걸어가게 했다는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책읽기를 하면서 가끔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했었다. 도대체 나는 어떤 힘에 이끌려 이렇게까지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오래된 질문에 작가가 이렇게 대답해 준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문학(- 108쪽) 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내 머리속에 오버랩되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였다. 어디든 사람사는 모습은 같다, 라는 말과 함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덩치만 커져버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중국의 근현대사는 다르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겪으면서, 톈안문 사건을 지나면서 중국은 참 많이도 흔들렸다. 그리고 참 많이도 변했다. 열개의 단어 중 풀뿌리는 나라와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렸던 민간기업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불러온 산채라는 말은 모방을 의미한다. 산채라는 말에는 모조품과 해적판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단어 홀유라는 말은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힌 말로 인터넷으로 인한 昨今의 이상한 세태를 꼬집고 있다. 그 말에는 과대선전이나 오락과 같은 의미도 담겨있다. 일본과 한국과 중국은 서로 비교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걸어간 길을 한국이 걸어가고 한국이 걸어간 길을 또 중국이 똑같이 걸어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중국의 근대와 현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우리도 그와 같은 일들을 겪어내면서 살아왔던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나라가 겪어낸 격동의 모습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그게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옮긴이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사회적 산물이기도 한 문학이 예술인 것이지 문학의 생산자들이 예술인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지식인 집단으로 여겨지는 문인 계층, 즉 시인과 작가들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예술로서의 문학에만 침잠해 있다고. 중국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침묵을 문제 삼을 수 없다면서 했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위화의 이 책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말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를 이끌어줄 시대의 어른이 사라진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아이비생각

 

1989년 톈안문 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미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톈안문 사건이 중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정치체제 개혁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1980년부터 1989년까지 중국 정치체제 개혁의 발걸음은 경제체제 개혁에 비해 다소 뒤처졌지만 여전히 개혁 과정에 있었다. 그러다가 1989년 톈안문 사건이 발생한 뒤로 정치체제 개혁은 완전히 정체되고 경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인들은 이로 인해 곧장 갈등만 가득한 현실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한쪽에는 보수 세력이 진을 치고 있고 한쪽에는 급진 세력이 버티고 있으며, 한쪽에는 정치군력이 집중되어 있고 한쪽에는 경제적 이익이 개방되어 있는 형국이 되었다. 한쪽은 교조주의가 점령하고 한쪽에서는 무정부주의가 활개를 치며, 한쪽에서는 규범을 잘 지켰지만 한쪽에서는 방탕과 무질서가 판을 쳤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 사회의 발전은 전면적인 발전이 아니라 단편적인 발전이었다. 그리고 이런 단편적인 발전은 이미 사회가 마땅히 갖춰야 할 건강을 해치고 있다. (-301, 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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