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키
D. M. 풀리 지음, 하현길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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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하다. 그야말로 읽을수록 쫄깃한 맛이 제대로다. 숨가쁘게 읽다보니 두툼한 책이 어느새 중반을 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밤을 새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수는 없지. 이 쫄깃한 맛을 좀 더 느끼고 싶으니까. 1978년의 베아트리스와 1998년의 아이리스는 같은 공간에 있다. 과거와 현실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두 여자가 겪어내는 일이 똑같다. 그렇다면 20년전의 상황이 20년 후인 지금까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일 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답은 '데드키'만이 알고 있다. 각각의 은행에는 대여금고가 있는데 그 대여금고가 여러 해 동안 이용되지 않으면 그걸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은행은 데드키를 이용해 죽어버린 금고를 열고 자물쇠를 바꾼다. 중요한 것은 그 대여금고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자주 죽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이 소설은 D.M. 풀리의 데뷔작이다. <데드키>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구조공학자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직업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구조공학이 뭘까 궁금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하나인 생활환경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건축공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 작가는 지금도 건물의 구조 문제를 조사하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사설 컨설턴트 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버려진 건물을 조사하는 동안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대여금고들로 꽉 찬, 지하의 금고실을 발견했고 그중 특별해 보이는 금고 하나가 그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채 하나의 미스터리를 창조해냈다고 말한다. 그러니 당연히 소설의 배경은 클리블랜드다. 클리블랜드 퍼스트뱅크.

 

1998년의 아이리스는 작가의 직업과 마찬가지인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그녀의 직장은 입사한지 석달밖에 되지않은 신입사원에게 어떤 프로젝트를 맡긴다. 오래된 은행, 이미 파산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는 오래된 은행의 구조를 살펴 스케치하라는 것. 스케치하기 위해 은행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던 중 의도치않게 보게 된 낡은 은행거래기록과 당시의 은행 비서에 관한 이상한 파일을 보게되고 그것들은 이내 아이리스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한다.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진흙탕에 발을 디디게 된 아이리스. 1978년 은행이 파산하기 직전, 자신의 모든 신상기록을 거짓으로 채우고 비서로 고용된 10대의 소녀 베아트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돈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과연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돈의 목적은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 모순이 우리 주변에는 수두룩하다. 뉴스에, 신문에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 더러운 진흙탕속에서 어쩌다 '데드키'를 손에 쥐게 된 두 여인의 운명은 과연 어찌되려는지. 20년동안 은폐되었던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는지. 금고를 향했던 탐욕스러운 손길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실종되거나 시체로 발견되었다는데... 다른 시간, 같은 공간속에서 같은 일을 겪어내야 할 베아트리스와 아이리스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주 조금은 예측해 볼 수도 있는 결말이라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끔은 상처받았던 이들이 치유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 때도 있는 까닭이다. 손가락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이 대단하다. 진짜 흥미로웠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힌 여러개의 반전이 가져다 주는 맛도 괜찮았다. 장장 650쪽에 달하는 분량을 채우고 있으면서도 내내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만큼 단단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 /아이비생각

 

"넌 이게 어떤 일인지 모르지? 너무 천진난만하면 안돼, 베아트리스! 이건 돈이 걸린 문제라고.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굶주리고 누군가는 굶주리지 않게 돼. 누군가는 좋은 집에 살고, 누군가는 허름한 집에서 살아야 하지. 누군가는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더러운 늙은이와 잠을 자야 한단 말이야. 이건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누구의 목줄을 죄고 있는지, 누가 이 모든 것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라고. (중략)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주민들의 집을 빼앗고, 지역을 망치고, 이 도시를 찢어발긴 놈들 말이야. 그들이 사기꾼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폭로하고 싶었어." (- 568, 5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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