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일까? 사랑이었을까? 사랑이었을것이다.
아마도 미술 혹은 그림을 관장하는 여신이 있었다면 그녀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화가 베르메르 앞에 인간으로 현신하여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 만남에서부터 이미 미술적인 공감을 느끼게 되는 베르메르와 그리트의 인연은
분명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녀였으나 결코 하녀가 아니었던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그 은근한 사랑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행여나 그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어떤 아픔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준다는 것은
아마도 모든 이들에게 가슴 설레임을 안겨주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게 만드는 모양이다.
 
"그러나 가끔은 그도 자기가 그랬으면 하는 세계만 보곤 해.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자기의 그런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초래할 결과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그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작품만을 생각한단다. 네 생각을 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너는 조심해야..."
"무얼 조심해야 하나요?"
"너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해라"
"하녀로 남아 있으란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속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 <235,236쪽>

그랬다. 그녀 그리트는 그의 그림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었다.
진주 귀고리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되고 또한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주인님이 그가 들어와 주기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갈 곳은 없었다.
안주인 카타리나의 귀고리를 그녀의 귀에 걸어주며 하녀도, 그렇다고 귀족도 아닌 그녀를 그리면서
화가 베르메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이 소설은 팩션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너무 현실적이다.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만큼.
책의 중간중간에 베르메르의 그림을 넣어주어 이야기의 흐름을 더욱 더 매끄럽게 해주었던
그래서 소설이 현실처럼 혹은 사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이 이야기의 실체는
정말이지 매혹적이라고밖에는 말할수 없다.
카타리나는 그리트가 자신의 귀고리를 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녀에게 향한 남편의 마음을
되돌려 놓고 싶었을게다. 그래서 그토록 절규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그리트는 그 순간 주인의 눈속에서 잠시 스쳐가는 후회를 보게 되고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가를 되묻게 된다.
역시 그는 그녀를 그림 이상으로는 보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십년 후,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다시 자신이 하녀로 일했던 저택의 문을 넘는다.
그리고 알게 된다. 주인님이, 그가 그녀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그의 유언으로 인해 카타리나의 진주귀고리를 받아든다.
그것으로 그녀는 하녀에게서 해방되었다, 라고 결론을 맺지만 나는 또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그것으로써 그녀와 그의 사랑은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라고.

나는 사실 그림에는 문외한이다. 갤러리에 가서 미술품을 감상한 적도 별로 없다.
설사 있다한들 내가 무엇을 알까? 그저 보이는 모습대로 나만의 생각을 말할뿐이다.
책장 사이사이에 끼워둔 베르메르의 그림속에서 만났던 짙은 명암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꾸미지 않는 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아빠가 언니를 그렸던 방식으로 나도 그리고 있어요.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으로,
 나 혼자만요. 아빠가 그렇게 그린 건 언니 그림이랑 내 그림밖에 없어요"<279쪽>
그래놓고는 친절하게도 뒷장에서 「소녀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 그림과 「진주 귀고리 소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느낌이 너무 달랐다.
「진주 귀고리 소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미묘한 시선과 표정을
「소녀의 초상」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뭔가가 빠져있는듯한 그런....

미리 생각했었던 책에 대한 편견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작가가 썼다는 《버진 블루》라는 책의 광고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읽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는 포기해버렸던 책이다.
나는 지금 그 책을 다시 생각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 라는 작가의 책을 다시한번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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