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만약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우스개소리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단 하루라는 시간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나라면 그냥 평소처럼 내일을 맞이할 것 같다. <페스트>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작품으로 역대 최연소의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했다. 1947년에 쓰여졌다는 <페스트>는 그의 작품 <이방인>과 함께 당당히 세계의 명저속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세계명작에 빠져 닥치는대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느낌이 어땠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를 어린 나이에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페스트>에는 인간이 공포에 대처하는 모습과 길들여짐이 함께 하고, 희망과 절망이 평행선을 달리며, 나와 우리가 함께 한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몰고 온 공포가 덮쳤을 때 사람들은 설마했다. 그들은 절망했다가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그러들기는커녕 사망자의 수치는 겉잡을 수 없이 늘어가고, 어느새 그 상황에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오히려 평온함을 되찾게 된다. 인간의 적응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쥐를 보며 페스트를 의심했던 의사 리외.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오랑시의 사람들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환자를 돌보며 평온한 듯 평온하지 않은 그의 일상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오랑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던 랑베르에게 리외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쩌면 저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54) 이라고.  그의 한마디가 랑베르에게 혼자만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결말을 불러왔지만 나는 랑베르가 탈출시도를 멈추겠다고 말했을 때 왠지 모를 단절감과 절망이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랑베르의 직업이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기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그렇게 오랑시의 사람들에게 공토와 희망과 절망을 안겨주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마릴린 체이스의 <격리>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페스트>의 배경이 프랑스의 오랑시였다면 <격리>의 배경이 된 도시는 샌프란스시코라는 점이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지쳐갔다. '남의 불행을, 남의 고통을 이렇게까지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속히 끝나기를 바랐다. 마음을 다해.  전염병과 맞서 싸우며 끝까지 함께 했던 친구 타루를 희생시키고 드디어 페스트의 기세가 사그러들며 희생자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는 의외로 단순하다.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온갖 부조리함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 작가라고 규정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아이비생각 

 

화자이기도 했던 의사 리외에게 친구 타루가 했던 말이다.

" - 중략-  그래요. 저는 이 세계를 알아요. 리외, 저는 단언할 수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기 안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그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자칫 방심하면 다른 사람의 얼굴을 향해 오염된 숨을 내쉬죠. 타인을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늘 자기 자신을 단속해야 해요. 병균은 이 세계의 섭리고, 따라서 치명적일 정도로 자연스럽죠. 그외 것들,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건강, 성실, 결백, 정직, 순수 따위는 의지, 그러니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의지의 산물인 거죠. 존경할 만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죠. 페스트 환자의 삶은 번거롭습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삶은 그보다 훨씬 더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로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더군다나 감염된 페스트와 싸우기 위해서는 극도의 피곤을 경험해야 하죠. -중략- " ( -119~ 12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