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마음이란 게 잔뜩 흠집 난 유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흠집이 많아질수록 유리는 점점 불투명해지고, 마침내 저편이 보이지 않게 되는 거야. 어쩌면 죽음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 아닌가. 마음껏 죄를 저지르고 탐닉한다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나쁜 숨을 들이마시고 독한 술을 마시는 것, 격한 일에 스스로 뛰어들고 마음을 용암처럼 끓어오르게 하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 바로 산다는 것이 아닌가. 그 모든 것을 절제하고 살아가는 삶이 과연 삶일까.
우리는 우리 존재와 기존하는 것의 명백성을 확신하며 안심하고 살아간다. 우리에 관해 부조리하다고 추측되고 생각되는 점은 조금도 없다. 정말 그럴까? - P308
아홉 살의 나와 열아홉 살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스물아홉의 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모두 나지만 더 이상은 나일 수가 없다. 나는 아홉 살 때처럼 피아노를 칠 수 없다. 열아홉 살 때처럼 밤을 새울 수 없다. 스물아홉 살 때처럼 무작정 사람을 믿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면 불행해진다. 그 ‘다른 사람‘에는 과거의 나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