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이 천천히 지나고 찾아온 봄. 내게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지은에게는 아닐 것이다. 알면서도 바라고 있다. 그만 잊어버리기를. 틈만 나면 베란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 눈으로 보는 십일층 아래 저 아득히 먼 땅이 문득 가깝게 느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나에게도 몇 번이고 그런 순간이 있었다. 뛰어내리면 안아줄 것처럼 저 땅이 나를 반기는 순간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코미디에 호러를 더해보라.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인생이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혹시 저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확실히 모르는 채 살고 있습니다.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제 삶의 일부는 그렇게 장례식처럼 살고 있어요." "....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더군요." 사이를 두었다가 나는 앵무새처럼 대꾸했다. "네, 그러나 삶은 계속되더군요." - P77
그런 것, 다시 돌아가기는 싫은 것. 그만큼 혹독했던 것. 언제나 가버리려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것. 그러나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달 무척 밝던 밤의 한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 청춘, 피었다 지는 꽃잎 같은. - P67
유리는 수현과 잘 걸었다. 이 산 안의 누구도 둘을 몰랐고 이 산길에서 둘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떤 고지에 오르자 잠시 내리막이었다. 돌아보니 불빛들이 가득했다. 따뜻해 보였다. -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