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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2004년 아쿠타가와 공동 수상작의 두 작가가 나란히 19세, 20세의 여성으로, 역대 최연소 기록을 깨서 화제라는 신문기사를 읽고 자연스레 생길 수 밖에 없는 호기심으로 서점에서 구입해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읽고 나서는 아쿠타가와상의 전통이 많이 허물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 이 정도의 작품이 아쿠타가와상을? 하는 의아심도 들었고. 물론 그 사실에 대한 불평은 아니다. 아쿠타가와 상이 일본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릴 만큼의 권위있는 상이었기에 든 약간의 불평이었을 뿐.
하지만 이 소설은 꽤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단은 고등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자기 주변의 세계를 무리없이 힘이 들어가지 않게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하츠의 눈을 통해 포착된, 학교라는 울타리안에서 펼쳐진 작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간 관계와 허식 등의 묘사가 압권이다. 인간 관계에서 생길 수 밖에 없는 미묘한 역학관계, 가식 등이 잘 관찰되어 있어 감탄스럽다.
재능이 있는 나이 어린 창작가들의 작품들은 자신이 아는 범위를 벗어나 더 스케일이 큰 무언가를 다루려고 하다가 오히려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와타야 리사는 자신이 겪었을 세계에서 정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개성있는 캐릭터와 섬세한 표현력을 통해 잘 형상화시켰다는 것에서 아쿠타가와 상 수상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납득이 갈 것 같기도 했다.
살아가면서 약간은 억울하기도 하고 인정하기 싫기도 한 일이지만, 타협이라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하츠는 자신을 굳게 걸어잠그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둘러보고 있다. 그녀의 눈에 비춰진 주변의 인간들은(니나가와를 제외한) 어느정도는 모두 가식적이며 순수한 인간적인 유대라기보다 상호간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물질적인 이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을 위해ㅡ예를 들면 도시락을 함께 먹을 수 있다든지, 실험조에 함께 소속될 수 있다든지, 선생님을 꼬드겨 클럽활동 운동 연습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든지 하는ㅡ그에 맞춰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하츠는 그러한 것들을 혐오하는 눈초리로 바라본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런 한편 그녀도 그런 성향 때문에 외톨이가 되자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홀로 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아를 확인하고픈 그녀의 마음이 보인다.
[인정받고 싶다...용서받고 싶다...빗살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대목.
그렇기에 자신보다 더한 (아예 주변 세계에 관심이 없는) 히치코모리 성향을 지닌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녀도 순간순간이지만 자기 주변에 대한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눈길에서 벗어나 순간의 깨달음을 얻는 대목들이 은근슬쩍 작품 사이사이에서 지나가고 있다. 하츠가 자신의 세계에만 갖혀있는 동안에, 단짝이었지만 주류의 '그룹'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을 버린 키누요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고,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대목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처음 들었다. 키누요,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활동적으로 변해간다.] 하는 대목.
한편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 아이돌 스타 '올리짱'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폐쇄적인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니나가와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다. 소설 내내 그는 올리짱 외의 세계에는 관심이 없는 인물이지만, 소설 후반부에서 실제로 그녀를 접하고 나서 환상과 현실이 다름을 느끼고 아픔을 맛본다. 성장제의라고나 할까.
학창시절을 겪으면서 다들 겪었을 법한, 사소한 사건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잘 포착되어 있는 것이 감탄스러웠고, 심리와 정경 묘사가 자연스러웠던 것에 점수를 주고 싶다.
사족 한 마디. '귀여니'의 작품들이 출판되었던 황매출판사에서 이 소설이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중고생용 인터넷소설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표지는 정말이지 맘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