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흉포한 신: 자살의 연구The Savage God: A Study of Suicide> 로 앨 앨버레즈Al Alvarez의 1971년작을 최승자 시인이 번역하여 1995년에 청하출판사에서 출간했으나 절판되었고, 해당 판본에서 누락된 4.1-4.3장을 황은주 번역가가 추가 번역, 을유문화사에서 개정판으로 올해 3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본작은 천재적인 창작혼을 불태우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우울증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에 대한 헌사로 시작, 자살에 대한 역사적, 사회문화적, 철학적, 정신분석적인 지적 고찰로 빛나 독해가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나 개인적으로 2025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꼽겠다.

1장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천재적인 시인이자 친우였던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의 죽음에 대한 깊은 애도와 일종의 부채감이 본작의 모티브가 된 것 같다. 테드 휴스와 함께 부부가 유명한 시인 커플이었으며 작가는 시 평론가로 플라스의 생애 마지막 3년간 비평가-시인의 관계이자 친우로 교류해온바, 앨 앨버레즈는 그의 추모에 한 장을 할애한다. 세간에 자살의 아이콘처럼 사후 유명세를 치르게 되어버린 악명을 바로잡으려는 듯한 조심스러운 배려와 애정이 돋보인다.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과 삶에서 드러났던 창조성-파괴성이라는 양극단의 전투적 에너지와 내면의 양가감정을 분석함으로써 이 책에서 앞으로 논의할 자살의 복잡한 정신심리적 측면을 암시한다.


2장
서구문화에서의 자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논한다. 오늘날도 자살에 대해 논하는 것은 금기인 것은 마찬가지이나 그래도 자살자를 희생자로 접근하는 반면에, 19세기까지는 자살에 실패하면 범죄자 낙인이 찍혔고 성공하면 사후 제도적으로 시신에 갖은 오욕을 보이고 유가족을 박해하였다고 한다. 서구 사회에 기독교 교리가 미쳤던 영향인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자살을 금지하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살을 죄악으로 보는 관념은 6세기에 이르러 기독교 교리에 추가되었으며, 오히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품위있는 대안’이었고 초기 기독교들에게는 순교를 영광으로 여겨 열풍이 일었다고도 한다. 이에 반대파가 정교하게 교리를 가다듬어 자살을 죄악시하는 교리가 만들어져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3장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장이라고 본다. 자살에 대해 흔히 알려진 오해를 실제 통계와 사례를 통해 바로잡으며, 자살에 대한 정신사회심리적 이론에 큰 부분을 할애한다. 사회적 오욕이자 도덕적 낙인에 불과했던 자살은 1897년 에밀 뒤르켐의 명저 <자살론>의 출간 이후 학문적인 연구 대상이 된다. 작가는 사회학적 측면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한편 정신분석학적 분석이 아직 부족함을 비판하며,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비에로스적 원시 공격성인 죽음 본능으로부터 자살의 근원이 비롯함을 논증한다.
이어 자살자의 감정적 측면을 다루는데, 동기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명확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명징하지 않으며 (완벽한 이성이란 허상이듯이) 정신병적 강박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완벽주의를 통해 자살자로 태어나는 부류의 사람들, 만성 자살자들이 결국 성공에 이른다고 한다.
자살의 이론을 다룬 제3장은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장이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강력 추천.

4장
문학 비평가답게 서구 문학과 자살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불후의 명작 <신곡>에서 단테는 자살을 죄악으로 다루던 중세인인 만큼 자살을 거부하였으나 자살의 괴로움을 나름 공유했음이 암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어 르네상스 시대의 수사이자 자살에 대한 최초의 옹호인 <비아타나토스Biathanatos>의 저자 존 던, 계몽주의 시대의 자살 실패자 카우퍼와 21세에 자살에 이른 천재시인 채터턴, 천재는 요절한다며 자살을 낭만화한 낭만주의자들, 실존주의자들, 키릴로프라는 유명한 가상인물을 낳은 도스토예프스키,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이성에 대한 조롱과 반예술을 주창하며 자살의 릴레이를 낳은 다다이즘, 모더니즘까지 숨쉬지 않고 달린다. 예술의 속성상 비탄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으므로 상처받기 쉬운 자기 안의 영역을 모두 탐구하는 것이 예술가이며 이에 모든 죽음의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상징적으로 시행하기에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자살이란 훌륭한 예술 작품처럼 마음의 침묵 속에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5장
에필로그. 마지막장에서 앨버레즈는 본인 역시 자살 생존자임을 밝힌다. 최근에 읽었던 클랜시 마틴의 <나를 죽이지 않는 법>은 저자가 자살 생존자임을 밝히고 진솔하게 경험담으로부터 자살자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시작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저자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이상에서 논의했던 자살의 복잡한 정신심리적 측면을 추체험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금기인 주제인 듯하나, 섹스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욕망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살인 것이다.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일찍이 그렇게 밝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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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hings Like These : Shortlisted for the Booker Prize 2022 (Paperback, Main) - 『이처럼 사소한 것들』원서
Claire Keegan / Faber & Faber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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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arrative, which details trifling ordinary lives surrounding a coal merchant and his family during the Christmas season, builds up for the two significant moments that has been prepared and expertly captured as the ultimate moral questions in this brilliant work. One is poignant and the other is beautiful and magical. It seems to cast a way on how to survive against injustice together as a human being with dignity nevertheless struggling in this sometimes evil world.
As a non-native English speaker, I cannot say that I didn’t have difficulty interpreting the context of the work in the bombarded Irish dialects and unique cultures in English text without referring to dictionaries or Google Images.😅

과연 놀라운 재능이다. 반전서사나 거창한 스토리 같은 것은 없어도 된다. 이 소소한 중편 소설에서, 클레어 키건은 주제를 관통하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두 가지 중요한 순간을 향해 일견 사소해보이는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영어 원서로 도전해서 아일랜드 방언과 특유의 문화를 모르면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쏟아져나와 길지 않은 분량인데도 애먹으며 읽었다. 작가가 의도한 몇 퍼센트나 맥락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천한 어학능력으로 독해하기에도 클레어 키건의 재능은 눈부시다. 역시나 문학작품 영어 원서는 쉽지 않다. (300-400 페이지의 논픽션보다 100페이지 남짓의 픽션이 원서로 읽기 훨씬 어렵다😭)

‘Isn‘t it a good job Mrs Wilson didn‘t share your ideas?’ Furlong looked at her. ‘Where would my mother have gone? Where would I be now?‘ ‘Weren‘t Mrs Wilson‘s cares far from any of ours?‘ Eileen said. ‘Sitting out in that big house with her pension and a farm of land and your mother and Ned working under her. Was she not one of the few women on this earth who could do as she pleased?‘

People could be good, Furlong reminded him-self, as he drove back to town; it was a matter of learning how to manage and balance the give-and-take in a way that let you get on with others as well as your own. But as soon as the thought came to him, he knew the thought itself was privileged and wondered why he hadn‘t given the sweets and other things he‘d been gifted at some of the houses to the less well-off he had met in others. Always, Christmas brought out the best and the worst in people. - P91

When he got to the gable and went round to the coal-house door, the need to open it left him, queerly, before it just as soon came back, and then he slid the bolt across and called her name and gave his own. He‘d imagined, while he was in the barber‘s, that the door might now be locked or that she, blessedly, might not be within or that he might have had to carry her for part of the way and wondered how he‘d manage, if he did, or what he‘d do, or if he‘d do anything at all, or if hed even come here - but everything was just as he‘d feared although the girl, this time, took his coat and seemed gladly to lean on him as he led her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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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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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고통이 곧 즐거움이란 것은 역설적인 쾌락인데, 양질의 책을 읽느라 뇌근육에 쥐가 나는 순간을 견뎌가며 뇌를 단련시키는 즐거움에 열심히 읽다 보면 인생을 뒤흔드는 강렬한 감동으로 진하게 남기 때문…인 줄 알았다. 허나 정말인가? 시인의 말처럼 세월이 지나고 나면 다 휘발되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두꺼운 벽돌책 및 고전들 소싯적에 정말 많이 읽었는데 다 어디로 갔니? 단 몇줄이라도 읽은 감상을 나의 언어로 해석을 거쳐야 기억 한 귀퉁이에 겨우 자리 잡을까 말까 하다. 절망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진은영 작가에 따르면 독서 내공이 깊은 작가들도 마찬가지라니 다행이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이라는 쿨한 제목 하나에만 이끌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작년 말에 서점에서 업어온 책이다. 저자는 헤르베르트 시인이 언급한 독서의 무용성을 소개하며 서문을 시작한다.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 싸우는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는 작가를 만드는 것이 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소 무거운 주제의 독서 중간중간에 머리 식힐 겸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집인줄 알았는데 고전 중에서도 비교적 덜 대중적인 고전을 소개하는 책소개글 모음집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지프 신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메가톤급 인기 고전도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다정하면서 유머러스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진은영 작가(시인)는 스스로를 평범한 독자라고 겸양하게 표현하지만 읽기의 내공과 성찰의 깊이가 범상치 않다. 작가는 백석 시인의 열거법을 예찬하지만 이책의 소개 도서 목록을 보았을때 진은영 작가님 본인도 남다른 성실함을 지닌 작가로 보인다. 목록이지만 전체가 유기적으로 엮여 숨쉬는 느낌이다. 이를 어쩌나, 영업당해 알라딘 보관함에 또다시 못 읽을 책들을 잔뜩 담아버렸다. 넓고 깊으면서도 성실한 성찰, 닮고 싶다.

카프카가 ‘문학적 전복‘에 관해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 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문학의 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 P61

아름답고 난해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메아리치는 것은 이 오만한 실존에 대한 저항이다. 블랑쇼는 ‘나는 나의 죽음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P58

담담하게 쓰인 마지막 한 줄이 종이에 무심코 손가락을 베일 때처럼 통증을 유발한다. 이런 사실의 가벼운 나뭇잎들이야말로 가라앉지 않고 마음의 수면 위를 계속 맴돌며 고통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평범함은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우리가 그 상태를 지키기 위해 인생의 한순간도 교활하거나 타협하거나 아첨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순간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그는 우리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여 발언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거다 / 놈들이 / 그놈들이 아직도 / 제 자식을 / 고문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어떻게 해서 / 한 애비의 기쁨이자 한 에미의 기쁨이 되는지 말이다 / 그건 / 그 애가 잡혀간 지 다섯 달 될 때까지는 / 아직 살아 있었다는 뜻이고, 우리의 최대 희망은 / 놈들이 그 애를 고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내년에 / 듣게 되는 것이다 여덟 달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상을 타는 배우가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긴 감사의 목록을 읊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그는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쓴다.
만일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잊는다면 그거야말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돕고 지켜온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극도로 무례한 증거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나열할 목록이 아무리 길어도 소중한 존재들의 이름은 기타 등등으로 생략되지 않는다.
「모닥불」처럼 단순한 시가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도 잊지 않고 모든 것을 호명하는 사랑의 단순함. 그 성실한 단순함.

이 아이들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유일한 어휘는 이 사회의 진부한 표현들이다. 사실 나는 독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은 언어의 통달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아직도 몸 바쳐 믿고 있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결손가정’ 출신이라는 표현에 만족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베유는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라, 계급, 성별, 재능 등 개인적 표식을 지워버린 채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에게 공통적 처참함을 만들어내는 몰개성적인 힘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몰개성적인 사랑뿐이라는 뜻이다. - P150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라. 심지어 행복을 원하는 마음까지도. 니체는 춤추는 별을 언급한 다음, 행복을 찾아 다니는 것은 비천한 인간의 일이라고 덧붙인다. 행복이 현대인을 지배하는 새로운 신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에서 우리가 행복이라는 관념 아래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요당한다고 말한다. 행복이 지배의 기술이 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은 이제 우리가 따라야 할 절대적으로 올바른 길로 간주된다. 이를 확인해주는 기본 지표들도 있는데, 결혼이나 안정된 가족 같은 것들이다. - P210

작가라는 곤경, 가수라는 곤경, 화가 혹은 배우라는 곤경. 필연성은 하나의 이름 아래 주어질 모든 곤경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생겨나는 위대한 속성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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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크눌프 - 크눌프 삶의 세 가지 이야기, 191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착한책 프로젝트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더스토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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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전 명작 한권에 겨우 2980원?
나도 모르는 사이 착한책 프로젝트 고전 시리즈를 요즘 한 권씩 모으고 있다. 고전을 특히 많이 읽던 중고등학교 시절 이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처음이다 이삼십 여년만!!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아래서 등을 중학교때 읽었었는데 별로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성장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뭔가 너무 촌스럽게 빤히 보여서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우화같으면서도 작위적이게만 느껴지던 도식적 구도가 맘에 들지 않아 어린 맘에 헤르만헤세는 내타입 아냐 하고 그 뒤로 다른 작품들은 손도 대지 않음.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빨간 약을 먹고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파멸에 이르는 서사가 내겐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아 맘에 들지 않았고.

크눌프도 비슷하다. 우화의 주인공 같은 인물의 생애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뭐 이런 느낌. 근데 어른이 되어 읽은 헤르만 헤세의 느낌은 좀 다르네. 크눌프, 미워할 수가 없다. 그 순수함과 디오니소스적 면모가 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란 어디까지 허용되고 그 댓가로 잃는 것은 또 무엇인지, 뻔한 스토리인데 작가의 인간에 대한 시선이 뭔가 사랑스럽고 뭉클하다. 변한 것은 헤세의 작품이 아니라 나일 진저. 중학교 때 읽었던 위의 다른 작품들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한번 펼쳐봐야겠다. 데미안은 그 옛날과 달리 또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하다.

결론: 크눌프 퇴근길에 착한 가격으로 집어와 자기 전까지 너무 재미있게 잘 끝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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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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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 빨리 소비하지 않고 여운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1년에 걸쳐 천천히 읽어 오늘에야 완독. 별 다섯개 만점에 열개.
시의성과 문제의식에서 200퍼센트의 점수를 주고 싶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여성은 남성의 뮤즈이자 성애의 대상 혹은 모성의 자비를 베푸는 존재 아니면 마녀와 같은 배격해야할 종속적 존재로서 타자화되어 소비되는 것이 현대문학에서도 여전하다. 심지어 여성작가들의 작품들에서조차 노골적이지 않으나 은밀히 내재한 타자화된 이미지에 갇혀있기 일쑤이니. 가장 큰 소수집단이지만 의외로 실존적 주체로서 서술되지 않는 여성들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고발문학으로서의 날카로운 하이퍼리얼리즘, 조남주 작가의 여전한 강점이다. 또한 여성간의 착취라는 문제의식을 제시하면서도 이로부터 벗어나 연대와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능성, 이 모든 날선 문제의식을 시종일관 지치지 않고 제기한다. 여성 청소년부터 죽음을 앞둔 여성 노년층에 이르기까지의 삶에서 타자화에 저항하여 현실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순간들을 두루 조망하는 작가의 펜이 멈추지 않기를,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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