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호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23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 옛적에 유복이라고 있었습니다. 유복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비가 금강산 호랑이에게 죽었고, 다 자란 유복이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러 떠납니다. 떠나기 전 어머니는 여러 미션을 수행시키면서 유복이를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나서 또 수련을 받습니다. 이제 드디어 복수를 하러 가는 길에 사람으로 변한 호랑이를 만나서 사살하고 최후의 빌런이자 아비의 원수인 거대 금강산 호랑이를 만나서 복수를 하고 가죽을 팔아서 부자도 되고, 어여뿐 색시도 얻습니다.

금강산 호랑이와 유복이 줄거리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금강산 호랑이를 잡은 유복이 전설입니다. 이미 많은 이야기책으로도 나와있습니다. 동화책 "루호"는 이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이 책은 판타지입니다. 가제본으로 책을 받았는데, 루호, 희설, 달수가 등장하고 아이들의 모습이 묘사될 때마다 '아 이 책은 그림이 있는 책으로 봐야 하는데!'라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같이 보던 아이들에게 '이 캐릭터들을 한번 그려봐~' 권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상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루호는 사람으로 변신해서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 어린 호랑이입니다. 보호자인(사실은 큰 호랑이인) 구봉 삼촌도 있고, 까치인 희설도 있고, 루호를 너무 좋아하는 토끼 달수도 있습니다. 모두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루호와 구봉은 유복이 전설에서 나오는 사람으로 변한 호랑이들의 후손입니다. 진정으로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고 간절히 원할 때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답니다. 사람을 너무 원망해도 사람으로 변할 수 있지만 눈매는 호랑이의 눈으로 남아있는다고 합니다. 결국 눈은 거짓말을 못하나 봅니다. 멋진 설정이다!라며 감탄하면서 푹 빠져서 책을 다 읽어 버렸습니다.

책에서는 계속 살아남은 호랑이들의 선택, 루호와 어린 친구들의 선택, 호랑이 눈썹의 저주를 물려받은 지아의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은 편견과 차별, 진위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맹목적인 신념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엣이야기속의 유복이는 사람 모습의 호랑이를 죽이면서 이것이 옳은 것인지, 저들이 정말 나쁜 호랑이인지를 고민하지만 호랑이는 원수라는 믿음 때문에 무조건 죽여버리고는 저주를 받아서  겉으로 드러난 호랑이의 무서운 모습만 볼 수 있는 저주를 가문에 물려줍니다. 사냥꾼은 인간 속에 섞인 호랑이에 대해서 짐승 주제에!라는 차별을, 살아남은 호랑이들의 이장과 어른들은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버려진 아기호랑이 루호에 대한 편견을 보여줍니다. 이미 인간으로의 삶을 선택한 구봉 삼촌은 루호와의 관계에서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루호야, 나는 아직도 그날 모인 호랑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이상하게도 빛나던 얼굴들 말이다. 예전에 넌 억지로라도 그들을 구해 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지? 그런데 나는 그들을 놓아 줄 수 박에 없었단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어. 용기를 내어 어떻게 살지 결정한 거야. 우리 자신을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선택들이야. 오랜 시대 간을 살아온 나도, 호랑이이자 사람인 너도 그렇지.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그걸 잊지 마.

루호 p60

어른의 시선에서 현실의 모습이 보입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인 장애인 연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던 댓글들,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차별의 말을 내뱉고 있는 차기 여당 대표. 선거 중에 보인 여성비하, 남성비하의 발언들. 노인 경시, xxx충 같은 비하 발언들 등등 뉴스에서 보이는 요즘은 차별과 무시와 편견이 필터 없이 드러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루호에서 보이는 세상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어쩌면 다문화 아이 일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고, 저소득계층의 아이일 수도 있는 루호. 어릴 때부터 차별과 불신을 느끼고 살아왔을 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도, 호랑이에게도. 어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아이들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대하지 못합니다. 반면 지아는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동물의 모습만을 보지만, 인간다움을 찾아냅니다.

구봉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호랑이는 다른 그 누구보다 서로를 꺼려. 자기 영역을 빼앗길까 봐 다른 호랑이가 다가오는 걸 가장 싫어하지. 그래서 하나하나가 죽어가면서도 서로 도와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저 의심하고 경계했지. " 구봉은 헛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난 그런 호랑이들과는 다르다고, 거의 사람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결국은 의심만 하고 있었나 보다. 그게 널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루호 p155

모악할미는 간절히 원하면 빨리 깨우칠 수도 있고, 사람이든 호랑이든 토끼든 모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쳐줍니다. 거기에 지아는 하나 더 깨닫습니다. 선택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루호는 우리가 늘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반만 맞았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루호 p159

루호도 지아도 스스로의 선택을 지키기로 합니다. 지아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친구들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고 용기를 내어서 맹목적인 신념과 편견을 가진 아버지에게 대항합니다. 루호는 위대한 호랑이의 혈족 운운하는 언니 호랑이에게 그깟 핏줄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의미 없다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 동물들과 사냥꾼의 아이들은 구봉이라는 어른 호랑이 아래에서 혈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족을 이루게 됩니다.

다 읽고 나서 참 개혁적인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평범한 판타지 같지만 인간 중심, 핏줄 중심의 이야기를 틀어서 다양성과 차별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가족의 구성까지 이끌어냅니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단순히 판타지로 사춘기에 들어선 고학년 아이들에게는 선택에 대한 지침서로, 같이 읽는 어른들에는 사회적, 정치적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멋진 책입니다.

* 창비에서 사전 서평단으로 가제본 책만 제공받았습니다 *

#창비 #사전서평단 #가제본 #옛이야기패러디 #한국형판타지 #금강산호랑이

#루호 #채은하 #오승민 #제26회창비좋은어린이책원고공모대상작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어. 용기를 내어 어떻게 살지 결정한 거야. 우리 자신을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선택들이야. - P60

구봉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호랑이는 다른 그 누구보다 서로를 꺼려. 자기 영역을 빼앗길까 봐 다른 호랑이가 다가오는 걸 가장 싫어하지. 그래서 하나하나가 죽어가면서도 서로 도와주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저 의심하고 경계했지. " 구봉은 헛웃음을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난 그런 호랑이들과는 다르다고, 거의 사람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결국은 의심만 하고 있었나 보다. 그게 널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 P155

루호는 우리가 늘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반만 맞았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 P159

내가 누구의 피를 이업다았나, 그런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어. 원래 호랑이는 혼자 살잖아. 당장 어디서 어떻게 살지, 누구랑 뭘할지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바쁜데 말이지. 위대한 핏줄이 어쩌고하는 것도 구질구질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담. - P194

그래, 내마음을 아는게 참 어렵긴 하더라.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유리. 고2.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고, 학교에서는 죽고 못하는 친한 친구도 있다. 엄마와의 과거는 나에게 힘이되어주는 추억이 아니라, 끊어내고 털어버리고 싶은 끊지못하는 끈이었다. 수능을 쳐서 대학만 가면 이 집에서도 독립하고 지긋지긋한 과거와는 이별할 참이었는데, 갑자가 내가 챙겨야할 동생 연우가 생겨버렸다. 


유리는 기본적으로 단단한 아이이다. 내가 어릴때 보던 청춘을 주제로 한 책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우울하고 내적으로 쌓아두고 끊어버리지 못하는 고통과 문제들 속으로 침몰되어버렸었는데, 요즘 읽어보는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은 경우 단단하다. 유리도 그랬던 것 같다. 입양한 엄마는 나를 버렸고 외할아버지와는 정이 없다. 학교에서나 웃고 떠들지만 집에 오면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다. 먹고 살기위한 기본적인 살림과 대학가기 위한 공부. 


규칙적으로 반보되던 일상에 들어온 연우는 엄마에게 학대를 받다가 엄마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 연우에게 유리는 자꾸 눈이 가고 점점 연우를 챙기게된다. 연우의 등장은 무미건조하던 할아버지와의 관계에도 변화를 준다. 각자의 다른 공간에서 서로 일절 간섭하지 않고 살아가던 유리와 할아버지는 결국 할아버지의 병때문에 크게 말다툼을 하게 되고, 두사람을 가로 막고 있던 벽을 하나 부수고 마주 볼수 있게 되었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유리는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밝히고 나서 구구절절 설명해야하는 이유들이 더욱 스트레스였다. 



책은 유리의 세심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서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감정의 과잉도 없고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진 덤덤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연우의 실상을 맞닥뜨렸을때, 사실은 보고 싶었던 친부모님에 대한 진실을 알았을때, 남처럼 살아도 어쩌면 유리가 버텨오는데 가림막이고 기둥이었을지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병을 알았을 때 묘사되는 화와 슬픔이 더 절절하게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연이가 유리의 마음을 알아준것처럼, 유리가 연우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던 것처럼, 세연이 엄마가 연우와 유리의 마음을 봐준것 처럼 누군가 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상처를 알아봐주고,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래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게 아닐까. 


* 문학동네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아서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의 작은 인어
루시아노 로사노 지음, 박재연 옮김 / 블루밍제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이포럼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아서 재미있게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


표지에 콩코르드광장에 바다의 분수가 있어요.
코로나가 맨 처음 확진자가 나온 2020년 1월에 파리에 있었어요. 놀러갔었죠.
그때 물이 나오지 않는 저 분수앞에서 아이들과 크라페를 사먹었는데.. 그 기억에 실실 웃으면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 고급스런 금박장식, 반짝반짝 거림을 공유하고 싶은데 사진으로는 약하네요. 그래도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 같아서.

바다의 분수 맨 꼭대기에 있던 돌인어상은 청동으로 된 조각들 사이에서 항상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리고 분수에 사는 다른 조각상들이 들려주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바다에 가 불 수 있다면!"


작은 인어는 밤마다 소원 하나를 속삭였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뱅자뱅이 동전을 던져서 소원을 빌려고 할때 금방 소원이 떠오르지 않자
그 순간 작은인어는 기회를 잡아서 소원을 빌어요.
그러곤 밤이 되자 인어꼬리 대신 발이 생겼어요.
분수대에 빈 소원의 유효기간은 딱 하루애요.
인어는 다른 조각상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바로 길을 떠났어요.
주어진 시간은 하루 밖에 없으니깐요.

결국 하루 중일 걷지만 파리를 벗어나지 못해요.
하지만 결국은 백조들의 도움으로 작은 인어는 꿈을 이루게 됩니다.

지금 40대 중반을 살면서 정말 많은 기회가 있었던것 같아요.
그 중에서 겨우 한두개를 잡았나?
어떤 기회들은 왜 놓쳤는지 후회도 되고,
근데 생각해보면 놓친 이유는 분명했어요. 그때 제가 뭘원하는지 몰라서 그게 기회인지 몰랐던 거였더라구요.

그냥 직장에서 조기은퇴를 하고 낯선 도시로 이사와서 뭘 공부해볼까 생각하다가 다시 방송대에 들어가서 평생교육사를 땄지만 뭘 해봐야지 생각도 없이 우물쭈물, 결국 5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아. 이 나이에 다시 무슨 새로운 걸 시작할까 체념도 하지만,
또 지나고보면 그때도 늦지 않았었는데 후회할까봐 고민을 해요.

그래서 질문을 해요.

"지금 내가 원하는게 뭐야?"

작은 인어는 아마도 <바다>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 뱅자뱅의 동전이 분수대로 들어왔을 때 바로 기회를 잡을 수 있었겠지요.


여행전에 아마 이 그림책을 봤으면 작은 인어가 갔던 길을 따라서 여행했을지도 모르겠어요.첫페이지에 <파리8구, 콩코드 광장>이라고 되어있는데, 혹시....파리의 다른 장소들도 시리즈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마 코로나가 안정되고 해외여행이 수월해지면 작은 인어가 머물렀던 곳의 인증샷들이 올라오지 않을까요? ^^

파리를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소록소록 한참 걷다 지친 기억, 기하학적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가 각잡혀서 줄서있던 정원들, 한쪽에서 조용히 물질하는 오리들.. 이런 풍경들이 떠올라서 저처럼 슬쩍 미소짓고 있을지도 몰라요. ^^


그림도 추억돋고, 내용은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해주는 멋진 그림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름 나라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마리트 퇴른크비스트 그림, 김라합 옮김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창비출판사에서 책만 제공받아서 재미있게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


<어스름의 나라에서(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94)>는 우리나라에서는 엄지소년닐스의 하나의 꼭지로 들어있는 단편동화이다.

그리고 죽기전, 가장 최근에 씌여진 동화이기도 하다.


이번에 창비에서 마리트 퇴른 크비스트의 그림을 더해 독립된 그림책으로 발간되었다.


그림책의 힘은 이야기가 가지는 상상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글동화로 나왔던 이야기에 딱어울리는 맞춤옷같은 그림이 더해지면서 훨씬더 풍부해진 그림책이 되었다.


해가 지기전 어스름이 내리는 시간,

이제 막 가로등이 들어오기 시간. 운전을 하다보면 그 시간이 가장 위험하고 시야가 어두워지는 시간이다. 방에 앉아 있어도 그 시간이 차라리 깜깜한 밤보다 더 감정적으로 어두워진다.

그런 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 예란이 있다. 다리가 불편해져서 더이상 뛰어놀수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아이이다.

아스트리트 린드그렌은 그런 현실의 속박이나 한계에 갇혀서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외로운 아이들을 '백합줄기 아저씨'를 내세워서 위로하고 있다.

백합줄기 아저씨는 허깨비 나라라고도 불리는 어스름 나라 사람인데, 작고 외롭고 몸이 불편한 예란을 어스름의 나라로 데려간다. 그리고 예란에게 말한다.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않아.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예란은 아저씨와 함께 하늘을 날아 높은 첨탑에도 올라가보고, 나무에 열린 사탕을 먹기도 하고, 전차와 버스운전도 해본다. 불가능이란것은 없다. 어스름나라에서는.


외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아이는 백합 줄기 아저씨를 만나서 마음껏 상상하며 영혼의 자유를 누린다.


요즘 아이들은 많이 바쁘다. 학원도 가야하고 공부도 해야하고 친구들하고 놀기도 해야한다. 시간은 모자라고 할 것도 많고, 하지 말아야할 것은 더 많다. 어쩌면 상상할 시간도 부족할 지 모르겠다.


린드그렌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어스름의 나라로 부른다. 그리고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않아.

여기선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어.


괜찮아, 어스름 나라에서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아.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블라인드서평단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서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호수는 깊다.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꽁꽁 얼어 붙은 호수는 그 위에서 텐트를 쳐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호수의 일 가제본, p7

어린 시절 정말 필요했던 시기에 결핍을 겪은 호정은 밖에서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가족과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그러나 꽁꽁얼어 붙은 호수에도 봄은 오고, 얼음은 녹는다. 그리고 그 얼음이 녹기시작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아픔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봉인되어있던 우울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호숫가에서 헤드폰을 쓰고 가족들과 멀어져서 외로움을 선택하는, 결국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터져버리는 호정을 보면서 나는 호정의 입장보다는 계속 미안하다는 호정의 엄마의 시선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제 나는 사춘기는 훨씬 지나서 그런 사춘기 딸을 가진 엄마라서 그랬나보다.

어린 시절, 사업이 망해서 불안해하는 호정이를 좀더 안심시켜줄걸, 밤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토하는 아이를 다시 삼촌에게 맡겨 할머니에게 돌려보내지 말걸, 친구들과 자랑스럽게 만두집에 찾아왔을 때 부끄러워하지말고 당당하게 만두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그럴걸.

그리고 알아서 잘 하는 딸이라고, 날카로워진 딸의 눈치만 보고 있지말걸..

그 모든 결정에서 선택한 오답은 결국 호정이로 하여금 슬픔과 우울을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가라 앉히고 울지않는 아이가 되게 하였다.

그래도 얼음으로 뒤덥인 호수에도 봄은 온다.

5분 뒤, 4분 뒤, 3분 뒤, 그리고 은기

호수의 일 가제본, p118

은기와의 몇달간의 기억은 호정의 꽁꽁얼어 붙은 호수에 봄을 가져온다. 얼음이 깨지면서 호수의 표면은 더 위험해진다. 은기가 사라지고, 친구와의 문제가 생기면서 호정에게는 호수속에 가라앉았던 우울이 행동으로 드러난다. 얼음의 균열을 만든 은기의 손, 그리고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호정이를 잡아준 엄마의 손, 결국 호정이는 봄을 맞이할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다쳐쓴지 볼 수 있을 텐데. 곪아가고 있다는 것도. 아물어 가고 있다는 것도. 상처는 결국 흉터가 되겠지. 이따금 흉터로 인해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나겠지만, 그래도 더이상 아프지는 않겠지.

호수의 일 가제본, p334

호수는 넓고, 깊이도 가늠이 안되지만 결국은 건너야한다. 안전하게 건너보고자 꽁꽁얼려보기도 하지만 결국 봄은 오고, 안전한 기슭에 오기까지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쳐야한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

봄이 오고 얼음이 다 녹고, 상처가 흉터가 되는 언젠가는 호정이도 은기도 더이상 아프지 않길..

우리는 슬픔에서 자라난다. 기쁨에서 자라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억으로 달이 빛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다.

인터넷 서점 : 작가의 말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