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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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서평단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서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호수는 깊다.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꽁꽁 얼어 붙은 호수는 그 위에서 텐트를 쳐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호수의 일 가제본, p7

어린 시절 정말 필요했던 시기에 결핍을 겪은 호정은 밖에서 친구들과는 잘 지내지만 가족과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그러나 꽁꽁얼어 붙은 호수에도 봄은 오고, 얼음은 녹는다. 그리고 그 얼음이 녹기시작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아픔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봉인되어있던 우울은 행동으로 드러난다.

호숫가에서 헤드폰을 쓰고 가족들과 멀어져서 외로움을 선택하는, 결국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터져버리는 호정을 보면서 나는 호정의 입장보다는 계속 미안하다는 호정의 엄마의 시선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제 나는 사춘기는 훨씬 지나서 그런 사춘기 딸을 가진 엄마라서 그랬나보다.

어린 시절, 사업이 망해서 불안해하는 호정이를 좀더 안심시켜줄걸, 밤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고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토하는 아이를 다시 삼촌에게 맡겨 할머니에게 돌려보내지 말걸, 친구들과 자랑스럽게 만두집에 찾아왔을 때 부끄러워하지말고 당당하게 만두도 주고, 음료수도 주고 그럴걸.

그리고 알아서 잘 하는 딸이라고, 날카로워진 딸의 눈치만 보고 있지말걸..

그 모든 결정에서 선택한 오답은 결국 호정이로 하여금 슬픔과 우울을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가라 앉히고 울지않는 아이가 되게 하였다.

그래도 얼음으로 뒤덥인 호수에도 봄은 온다.

5분 뒤, 4분 뒤, 3분 뒤, 그리고 은기

호수의 일 가제본, p118

은기와의 몇달간의 기억은 호정의 꽁꽁얼어 붙은 호수에 봄을 가져온다. 얼음이 깨지면서 호수의 표면은 더 위험해진다. 은기가 사라지고, 친구와의 문제가 생기면서 호정에게는 호수속에 가라앉았던 우울이 행동으로 드러난다. 얼음의 균열을 만든 은기의 손, 그리고 호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호정이를 잡아준 엄마의 손, 결국 호정이는 봄을 맞이할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눈에 보이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를 어떻게 다쳐쓴지 볼 수 있을 텐데. 곪아가고 있다는 것도. 아물어 가고 있다는 것도. 상처는 결국 흉터가 되겠지. 이따금 흉터로 인해 상처의 기억이 되살아나겠지만, 그래도 더이상 아프지는 않겠지.

호수의 일 가제본, p334

호수는 넓고, 깊이도 가늠이 안되지만 결국은 건너야한다. 안전하게 건너보고자 꽁꽁얼려보기도 하지만 결국 봄은 오고, 안전한 기슭에 오기까지 있는 힘을 다해 헤엄쳐야한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

봄이 오고 얼음이 다 녹고, 상처가 흉터가 되는 언젠가는 호정이도 은기도 더이상 아프지 않길..

우리는 슬픔에서 자라난다. 기쁨에서 자라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행복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슬픔에 침몰하지 않을 수 있다. 태양의 기억으로 달이 빛나는 것처럼.

그러므로 흠뻑 슬프기를, 마음껏 기쁘기를, 힘껏 헤엄쳐 가기를. 발이 닿지 않는 호수를 건너는 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믿건대, 어느 호수에나 기슭이 있다.

인터넷 서점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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