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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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읽으면, 현대의 일본소설들의 한없는 가벼움이 우스워진다.

현대의 소설들은 서점에 서서 그냥 읽어도 한두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들의 노고를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소설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의 작가들 중,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사다 지로쯤이면 끝이지 않을까.

이미지만으로 소설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이미지만으로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그것만으로 그의 글이 영혼을 울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소세키는 감히 세상과 사람을 한없이 조롱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켜준다.

고양이는 어디든 가고, 어디에든 있다.

그네들은 사람들을 구경하고, 비판한다.

서점에 나가서 보았다.

왜 이렇게 고양이,에 대한 책들이 잔뜩 즐비해 있을까...

단 한권도 소세키 정도의 깊이를 가진 책이 없다.

이 고양이만큼 우화적으로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또한 사람에게 따끔할 수 있는 글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고양이일 수 있으면서, 또한 그의 관찰의 대상일 수 있다.

긴긴 겨울날, 칩거하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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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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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아름다운 책이다.

충분히 많이 팔리고 또, 충분히 많은 사람이 읽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되는 책,

다만 가슴이 아프다면 정작 잘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아이들에게는 이 책이 여전히 의무적으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휩쓸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을까.

우리를 구해줄 모모와 같은 존재가 과연 있을까싶다.

그래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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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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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를 개조하겠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창조한다.

나는 어떤 대단한 상을 받았다고 해서 박수를 보내지는 못한다.

아쿠타가와상에 대한 지지가 약해지고 있다.

일본의 대중소설은 이제 끄트머리에 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점점 더, 가볍게 가볍게 쉽게 쉽게 누구나 읽고 고개를 끄덕이고,

이 정도의 SM, 문신, 도발, 기괴함은 그네들에게 늘 있어왔던 것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절망이며 변신이며 감동인가.

뱀에게 피어싱은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얇은 서사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 소설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아마나 루이, 시바와 같은 인물군의 특이성이나

그네들의 이른바, cool한 면이겠지.

우리 현실이 도무니 지금 이대로는 아무것도 보잘 것 없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뭔가 달라지고 싶어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이 그러한 인물들에게

기대이면서 한숨한번 혹은 눈물한방울 떨칠 수 있는 쉽터가 되기를 바라는 대리충족아닐까.

나는 죽어도 소설은 하향평준화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무식한 사람이기에...

한국 중고등학생들이 뱀에게 피어싱을 뒤적거리면서 재밌다, 와, 경탄하고 이 책이란다.

우우우우우. 탄성을 지르는 것을 보면서 슬퍼지는 그런 유치한 사람이기에...

독서와 소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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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 A Life -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미다스 휴먼북스 3
도로시 허먼 지음, 이수영 옮김 / 미다스북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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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 만화로 보는 전기같은 데서 헬렌켈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물론, 어린시절에 보이기에는 지나친 면들이 없지 않지만, 참 미화된 글들이었다는 것을 절감한다.

한국에는 전기문을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없는 것같다. 일반적으로 전기라는 분류를 어린이들에게 읽혀서 귀감이 될 만한 글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전문적으로 전기문을 쓰는 작가들이 있고 그 글은 결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헬렌켈러의 특이성에 대한 관점보다도, 그녀의 삶에 대한 혹은 그녀를 둘러싼 인간군상의 모습들 특히 애니설리반이라든지 가족들, 벨, 후원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개인만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것까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인간을 보는 인간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더불어, 전기에서 메울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저자의 의견들이 적절하게 책의 흐름을 짚어 주고 있다는 면에서도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은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개개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속한 사회 내가 만들어가는 사회에 대한 성찰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며, 한국에도 전기를 본질적인 면에서 써내려가는 작가가 어서 탄생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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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 우리 소설로의 초대 2 (양장본)
윤대녕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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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원래 있던 곳은 어디일까. 굳이 유신론자가 아니더라도, 그 끝에는 '최초의 존재'가 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또 누가 누구를 낳고... 나를 품어 낳아준 엄마를 품어 낳은 엄마의 위로 위로 올라가면 그 곳에 그런 존재가 있다.

윤대녕의 소설들은 일견, 속살거리는 것처럼 섬세한 묘사와 아름다운 공간이 함께 있다.
그리 주목을 받은 단편이 아닌지, 자주 거론되지는 않았던 이 작품을 문학동네 계간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은항아리 안에서를 다시 읽어 보았다.

은항아리에는 시간이 없다. 거기로 찾아들어온 여자가 시간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은항아리는 그 따름이다.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들이 시들해지고 만다. 남자는 은항아리에서 한없이 자유롭다. 물에 잠겨 있는 듯이, 자궁 속에서 휴식하듯이. 요리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문체들이 따뜻하고 정겹다.

우리는 누구나 원래적인 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또 결국은 거기로 간다. 그 길로의 여행에 적합한 길잡이처럼 속살거리는 윤대녕의 소설을 가을, 다시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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