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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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절대권력을 가진 국가를 상징한다. 개인은 서로에게 늑대이기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한 제도로 국가를 긍정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소설을 보면 벤이 핵폭탄을 투여한 국가에 대한 반감으로 그 나라 자유의 '상징'을 부수는 이야기다. (모든 국가는 타락했다는 에머슨의 말로 소설을 시작하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핵폭탄 투여시 태어났지만 반전운동의 일환으로 징집을 거부하고 감옥을 간 그의 과거와 테러리스트로써 현재가 상충하는 혼란이 생겨버린 그의 인생. 그 좌절의 결과로 그는 자의반 타의반인 폭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나이브하게 소설을 보면 단순히 거대한 괴물을 주인공의 운명으로 보는 것이다. 인생이 리바이어던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규제하고 개인을 압살시키는 그런 괴물이라는 것이다. 세상은 거대한 유기체로서 양심적 개인에게는 삶 자체가, 세계 자체가 거대한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우연은 없다. 모든 우연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소리지만 주위사람들을 잘 살펴보라. 그들이 당신 자신 삶의 일부이고 구성인자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있음직한 이야기'라는 픽션의 개념에 너무 함몰되어 우연적 요소가 과잉하다.

검보다 강한 펜을 내팽개치고 폭탄을 선택한 한 남자의 결단은 많은 것이 부족한 책상물림의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할까? 끝없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책을 읽지만 결국 행동만한 인생은 없다는 것일까? 한 양심적인 남자의 난도질당한 삶을 소개받는 것으로 그 생각의 단초로 삼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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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혁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1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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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보수주의를 탐구하였다. 한 나라의 정치의식은 그 나라의 국민의식을 넘지 못한다는 말에서 독일 민족은 세계대전의 발발과 나치에 대해 책임이 있다. 또한 그런 그들에게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지식인들 (그들이 나치에 탄압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지적유희'라고 말하며 세간의 부정적 시각과 다르게 그들 보수주의자들을 사상적 측면에서 대우하고 있다.

보수혁명주의자들 (보수와 혁명이라는 개념 결합에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은 과거를 안고 가지 않는다. 또한 미래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를 '진보'라고 보지 않는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래서 그들은 보수주의자인 것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현재를 살아 낸다. 그래서 수구세력이나 여타 보수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그들은 서구식 '개인'주의에 반발하는 독일 특유의 '공동체'주의자 들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독일의 감성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다르고 그나마 러시아와 비슷하다. 건강한 보수, 공부하는 보수가 올바른 사회에 필수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쉽게 쓰여져 잘 읽힌다. 쉬운 예와 용어로 독자를 배려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래서 '독일', '보수', '혁명' 이런 단어에 친하지 않은 독자라도 힘들이지 않고 읽어낼 수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 관심은 있어야 할 것이지만) 대중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이런 인문학적 기획물이 제대로 정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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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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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69년 달에 인간이 발을 대어 '달'이라는 신화가 깨뜨려지는 때로 시작하여 주인공이 스물넷이 되는 해(71년)에 끝이 난다. 연대기와 주인공을 중첩시켜 시간의 심볼로 삼으려는 시도는 아니니 때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주인공은 시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끝에서도 히피의 모습이지만 스물 넷의 히피는 생의 욕구가 충만해진 새로운 '자아'이다. 소설은 주인공 삶의 과도기를 담았다. (소설의 끝에 주인공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황순원의 '소나기', 혹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같은 성장소설이다.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 알을 깨는 고단한 '통과제의'를 말한다. 안개같은 '포그'와 그의 아버지 학자 '솔로몬', 그의 할아버지 탐험가 '에핑'.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인생에 충실하다. 마르코 스탠리 포그가 질퍽한 우연으로 점칠된 그의 뿌리를 하나씩 둘씩 알게되는 과정(한 평범한 미국 가계사일 수도 있다)을 그렸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은 상실이다. 상실은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인데 소설의 주인공들은 줄곳 잃어버린다. 그리고는 잃어버릴 것들을 계속 찾아다닌다. 인생의 은유 혹은 인생유전이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세상일 뜻대로 안된다고 함부로 자신을 포기할 일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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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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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행동의 동기는 무엇인가. 그 동기는 어딘지 알 수 없는 뇌의 한 부분에 전기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다. 동의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두축으로 진행되다 결말에서 합해진다. 구조적으로 잘 짜여졌다. 소설은 모든 인간행동에는 동기가 있다. 그 동기는 뇌의 한 부분를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소설의 원제 최종혹은 궁극적인 비밀이란 그 쾌감중추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소설은 아니다. 정확한 플롯을 가진 체계적인 스토리텔링이다. 뇌와 인간의 몸 그리고 신화 등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결국 한편의 드라마이다.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끝에서 최후의 비밀을 능가하는 사랑이라는 인간행동의 동기를 암시한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깔끔하게 끝을 맺었다. 결말이 아쉬운 자는 홀로 결말을 구성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좀 더 파괴적이거나 전기코드를 뽑으면 죽어버리는 의식하는 컴퓨터보다는 좀 더 고차원적인 그런.(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참고해도 될 듯하다.)

저자는 한가닥의 과학적 사실로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이야기 꾼이다.
소설에 의문을 띄운다는게 그렇지만, 좀더 깊이있는 책읽기에 도움이 될까하여 말하자면, 첫째 마르탱은 자신의 질병(리스)을 치유시키려는 노력을 왜 한번도 시도하지 않는가. 둘째 이지도르는 복상사임에 분명한 핀처박사의 죽음에 타살의혹을 제기하는 타당한 이유가 보이지않는다. 셋째 조르다노 교수를 죽이도록 사주한 인물은 누구인가. 관습적 스토리에 의하면 그 사주자는 죽거나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그 죄를 지는 사람은 없다.

인간 행동의 동기를 돈에서 찾든, 친구(인간관계)에서 찾든 리비도에서 찾든 그 공통인자는 결국 뇌이다. 그 뇌라는 물질에서 우리의 정신과 스이식이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수 있다.어리석다고 꿈만 꾼다고 자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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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무늬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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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다. 그를 텔레비전(티비 책을 말하다)에서 처음 보고 너무 이웃집 아저씨 같아 어색했던 적이 있다. 그의 글은 언제나 철저한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에 반한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대체로 엘리트주의자다. 고종석은 그런 태도를 숨기려 하지만 자유라는 말에서 풍기는 당당함 그리고 삶과 사람에 대한 자신감은 숨기지 못한다. 프랑스식 똘레랑스가 몸에 베인 탓일까 그는 일관되게 자유주의자로서 개인에 대한 존경을 말하지만 자유주의자가 타인을 존중해야다면 그건 필시 과잉된 자유주의자의 태도이다.

매문(글을 판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태도가 강준만과 그를 통하게 했을까. 고종석은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강준만과 진중권에 대한 편애를 드러낸다. (깐수 정수일이 새로이 등장하긴 하였다 )

한때 고민으로 생각되던 것은 어떤 상대방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해도 괜찮은 건지 하는 것이다. 앙똘레랑스는 똘레랑스될 수 없다고 했지만, 세상에는 앙똘레랑스 보다는 대화부족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드는 측은지심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고종석이 답을 내 놓았다. '나는 살균된 세상이 두렵다.' 참을 수 없는 그들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 대신 제 몫만 챙겨주면 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적인 좋은 해결방안이다.

칼럼니스트는 혹은 글로 돈을 버는 자들은 의무감에 글을 쓰는 모양이다.그래서 노동이 되는 모양이다. 그들의 그런 태도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이 그들만의 생각으로 그들만의 일관된 사고체계로 가식없이 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은 옳다.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와 하기싫은 할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배울게 많다. 좋은 책은 삶을 읽도록 동기부여를 한다. 읽느라 바빠서 느낄 시간이 부족해지기도 한다. 이 책은 재밌다. 글이 쉽고 짧아 잘 넘어간다. 매체 특성 때문이다. 이 책은 일간지, 주간지 등에 한번씩은 실린 글들이라 평균적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더욱 그러하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은 큰 장점이다. 고종석은 사고의 자유로움에 더하여 언어에 대한 해박함이 그의 글을 더욱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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