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짓는 물고기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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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지고 싶은 것이야 손에 들어온 이상 꼭 쥐고 놓치고 싶지 않겠지만 적절한 순간에 놓을 줄도 알고 시원하게 웃으면 쿨 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외로워서일까. 남자는 '미소짓는' 물고기 아니라 '자신만을 향해 미소짓고 있다고 믿고 싶은' 물고기를 얻은 것은 아닐지. 수족관 앞에서 자신 만을 향해 웃고있는 물고기라니. 지미의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컷에서 많은 물고기 중에 그 물고기를 찾아보라, '윌리를 찾아라 '보다 재미있다.

'맨인블랙2'에서처럼 우리도 어쩌면 누군가의 거대한 사물함의 하나에 갇혀 아웅다웅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도 어항의 투명한 벽 안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어항 안에서 허둥댔던 것처럼 그가 물고기에게 오히려 행복을 강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소유욕을 버리고 자신에게 소중한 것에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자가 물 속에서 알몸으로 수영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유롭다.

중국이나 대만 문학의 그림책에는 차이나 칼라에 머리를 양쪽으로 동그랗게 말아올려 묶은 여자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너무나 서구적인 일러스트 때문에 오히려 상큼하고, 그리고 오히려 동양적인 주제가 녹아있어서 더 특별하다.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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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배낭여행 수첩
송영철 지음 / 꿈의날개(성하)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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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비행기 한 번 못 타봤지만 올해는 여행 할 일이 몇 번 생길 것 같아 들뜬 마음에 유럽 관련 도서를 몇 권 둘러봤다. 우선 별로 아는 게 없어서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여행기 보다는 전형적인 내용에 따라만 다녀도 좋을 패키지 여행처럼 전체 유럽의 기본을 다루고 있는 책이 좋을 것 같았고, 이 책은 그러한 기본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차를 타고 화장실을 가고 축제에 참여하고 박물관을 이용하고 먹을 것을 해결하는 일 따위의 아주 뻔하지만 해외 여행 한 번 안 나가본 사람들이 궁금할 법한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가르쳐준다.

어디든 떠나서 마주쳤을 때 알아야 느낄 수 있도록 여러 명소와 명작을 있게 한 위인의 키워드도 던져준다. 뭐, 찾아서 보고 느끼는 것이야 여기 인터넷 앞에서도 가능한 일일 텐데. 문득 여행을 떠나는 것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노천카페에서 선그라스 끼고 사진 한 방, 에펠탑을 등 뒤에 놓고 찍은 사진을 몇 장 가지기 위해 떠나는 것은 아닐텐데. 비행기를 타고 발도장 찍고 온 나라가 몇 개 더 많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더 빛나게 해줄까.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서핑하면서 너무 먼 곳까지도 다 안다고 자만한다. 하긴 수백 일 동안 세계 곳곳을 둘러보고 눌러 사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단 며칠이라도 낯선 곳으로 떠나 모르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두근거릴 테지만. 영국 하늘 밑에서 들어보는 오아시스와 콜드플레이는 더 맛있을지도 모르겠다.

비틀즈가 어떤 멤버들로 구성되었고 괴테의 생애가 어떠했는가에 대한 정보부터 실제로 여행지에서 몇 번 지하철을 타고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까지 한꺼번에 담음으로써 책의 기획 방향은 다소 모호해진 듯도 싶다. 참고 사이트들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에서 뒹굴 대면서 읽기에 오히려 적합한 듯 하다. 뭐 굳이 들고 떠나기를 원한다면 무거워도 참든지 아니면 주저하지 말고 실제 필요한 부분만 떼어서 따로 만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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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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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다. 방학을 맞아 퍼질러서 늦잠자는 동생처럼 아무 의무도 없이 나도 회사 안 가고 마냥 자고 싶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살기 편하다는 것을 알았고 적당히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생활이 바람직하다고 강박관념처럼 믿으며 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친 건 사실이다.

그래서 폴오스터의 여러 책 중에서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다가 망설임없이 집어들게 되었다. 나도 힘들었거든. 그도 숱하게 썼으며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포기했으며 실망했고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도 자신을 믿었고 많은 좌절에서 오히려 단련되었다.

액션 베이스볼 게임이 너무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번번히 비즈니스로서의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끝에 그가 만든 액션 베이스볼 카드를 샘플 페이지도 아니고 모든 카드를 다 실은 걸 봐도 그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자신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줄 것이며,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자신감. “이것 보라니까. 정말 재미있다구.” 아집과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귀엽고 좋다. 끝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이 자신감, 난 이게 필요했었구나.

다양한 직업을 통해 여러 유형의 인간들을 만나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영화를 보았으며, 별의별 상황을 다 경험한 그는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게 정말 그가 겪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는 이 책을 통해 '아직도 난 쓸 거리가 넘쳐' 하고 풍성한 소재를 자랑하는 것도 같다. 자세히 들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그의 인생역정을 간단히 소개만 하고 skip해 버려서 뭔가 폴오스터의 풍성한 글읽기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좀 더 생동감있는 스토리를 원하는 이들에게 말하는 듯 하다. “앞으로 내 책에서 하나씩 만나게 될테니 참아”

좋아하는 일로 밥 먹고 살지 말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그런데 글을 써 밥 먹을 수 있다고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신감과 확신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일지 문득 궁금하다.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번역을 하고, 포르노도 써보고, 칼럼과 희곡을 쓰고 대중의 기호에 맞도록 영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품위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 탐정소설을 썼다. 다양한 경험과 대중의 기호를 의식한 글쓰기에 훈련이 되어 그는 이제 오히려 누구나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는 대중적인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나. 그런데 글쓰기는 과정일까, 결과일까.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글에서도 늘 자기 자신을 감출 수 없을 텐데.

'로렐과 하디'를 비롯한 그의 세 편의 희곡은 왜 공연에서 망했는지도 알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시나리오 지문에서 '슬픈 엉덩이'를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설경구 얘기처럼 무대에 상연되어 한 번 지나가기에는 너무 어렵다. 레제 드라마라면 모를까. 아무튼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닫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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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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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진수에 익숙해져 10년 단위로 뭔가를 결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아쉬운 구석도 있겠지만 씨네 21 편집장으로 5년 이상 버티기도 솔직히 버거웠을 터, 소설을 쓰겠다고 5년간 몸담은 씨네 21을 나와 그녀가 처음 낸 에세이집이다. 이 에세이집이 한 두어 권쯤의 자신이 공들여 쓴 소설 다음에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네 21의 권위를 등에 업고 읽혀지기도 했을 이 책만큼 앞으로 나올 그녀의 소설도 읽을 만할지 몹시 궁금하다. 물론 나의 이런 의혹을 일시에 말소시키고 '역시'라고 생각될 만한 책을 내 주었으면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그녀의 생활태도에 대한 글은 읽기에 무난하지만 기자와 편집장으로서의 경험을 서술한 부분들은 가벼운 읽을 거리에 익숙해진 나에게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충분히 가지지 않고는 낱말의 뜻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가하면 영화 잡지 편집장 생활로 누려왔을 낯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인 문화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기도 해서 나는 책을 읽으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키워드들을 수십 개 적어두기도 했다. 그녀의 글에서는 씨네 21 편집장으로서의 느낌보다 대학시절 사회운동에 가담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했던 앞선 세대의 선배 냄새가 더 짙게 나타나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의 글은 만만하고 말랑말랑한 여성 에세이와는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다.

직장여성으로서의 그동안의 고난이나 어려움에 대한 노하우를 조목조목 짚어줄 수있는 책이라기보다는 여러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한겨레에서 씨네21을 내놓게 되기 까지의 배경과 또 여러 영화제를 치뤄내면서 생긴 자부심과 5년 간 영화계에서 있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구색을 맞춰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뭔가 아직 성공했다고 찬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듯도 싶고, 치열한 감동을 주기에도 뭔가 아쉬운 것은 왜일까.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인생선배로서의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는 메모할 만하다. '나는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을 잃는 그런 것만 아니라면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것이다. 그늘에서 나오면 양지가 한결 따뜻하고, 슬픔의 맛을 아는 만큼 즐거움의 결도 풍성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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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드 닭 에펠탑에서 번지 점프하다 - 이우일의 303일 동안의 신혼여행 1
이우일 외 / 디자인하우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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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지 않고 여행기를 읽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일 수도 있다. 부럽기나 하고 아무리 그래도 사진 속의 유적지들이 생생하게 다가올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스럽게 헤매며 때로 사기당하며 낯선 거리에 떨어져 더러운 호텔방을 전전하면서도 즐거움을 찾는 그들의 여행은 정말 유쾌하고 따뜻했다. 너무나 친숙하여 나도 모르게 덩달아 다리가 아프고 함께 지치고 낯선 풍경들에 놀라며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남편이 그린 일러스트와 부인이 쓴 여행기를 함께 읽는 맛이라니..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앞 표지에 실린 그들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특히 이우일의 일러스트로 표현된 귀엽고 독특한 부부의 모습은 만화책만큼 재미있어서 나는 순서대로 읽는 것을 참지 못하고 몇 페이지씩 앞서 만화만 먼저 읽기도 했다. 원색의 사진이 게재된 여행기는 흔하지만 이렇게 일러스트로 눈앞에 본 듯 풀이하여 그려내어 소개하는 유적지도 재미있었고, 이우일의 눈을 통해 본 반쯤 삐딱한 일러스트는 쿡쿡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대책없이 사고싶은 것들이 독특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무덤덤하게 잘 수 있는 아내와 큰소리는 치지만 아이같기만 한 천진난만한 남편, 그들 부부가 오랫동안 알고 온 사람들처럼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만난 각지의 사람들과의 우정이야기는 뭐, 여행기에서 흔히 나올 법한 뻔한 이야기지만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솔직하여 재미있었고 여행지에서 더 돈독해진 그들의 우정같은 사랑이야기를 엿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어디도 가지 못해 일상에 잡혀 사는 사람들에게 귀엽고 즐거운 부부의 여행기를 뒤쫒는 것만으로도 책읽기가 마음 따뜻한 여행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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