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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머리를 빗으면 '뒷 머리는 남의 머리냐' 하던 엄마의 장난 어린 말투를 듣던 게 생각난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앞 모습만 볼 수 있었고 내 뒷모습을 보려면 또다른 거울 하나를 어렵게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앞모습도 진짜 나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뒷모습은 거울에 의존하기에도 불편하다. 나 자신이 쉽게 바라볼 수 없기에 내 뒷모습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정작 나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그보다 다른 사람의 뒷모습은 자신의 뒷모습 보다는 바라보기 편하다. 타인의 뒷모습은 얼굴을 돌리고 있어 표정을 담을 수 없기에 보다 애잔하고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뒤돌아서 헤어지는 상대방의 뒷모습이라던가, 먼저 앞서가고 있는 경쟁자의 뒷모습이라던가. 사람 많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이의 뒷모습이라던가.
뒷모습은 상대방 몰래 나만이 바라볼 수 있어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책은 '뒷모습'을 소재로 하여 사진찍기를 시도하였다는 것만으로도 퍽 매력적인 작업처럼 느껴졌다. 바라보고 있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은 듯 자유롭고 자신에 열중해 있는 뒷 모습, 상대방을 향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듯한 거리낌없는 뒷모습을 캐취한 것에 대한 책이라니.
하지만 각 사진들에 달린 미쉘 투르니에의 글들은 그의 생각을 엿볼 수는 있다는 의미에서 읽어줄 수는 있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그녀의 생각에 동조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도 있고, 각 사진을 제각기 다른 의미의 뒷모습으로 풀어내기 위한 그녀의 작업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작위적이라는 데 아쉽다.
포루투칼의 뱃사람들이 배를 미는 뒷모습을 '짐승과 닮아있다'고 표현한다거나 튈트르 공원의 의자에서 낮잠에 빠져있는 사내를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 '필경 안 좋은 냄새가 날테니, 코고는 소리만 들어도 지겹다'라는 편견어린 어조를 실어 낮잠에 빠진 중년 사내를 추한 사내라고 감히 단정지어버린다던지. 또한 루브르에 있는 궁둥이가 돋보이는 조각상의 얘기를 풀어내기 위해 원숭이나 소나, 다른 동물들에게 달린 건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이 인간에게서 예외적인 총예를 받는 이유'가 '궁둥이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저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작가의 생각을 엿보며 느슨해지고 세상을 포용하는 시선을 기대했으나 세상을 이미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글들은 사진을 해석하고 분석해서 말 만드는 데 너무 힘이 들었던 것 같아 읽고 나니 어쩐지 뭔가에 강요당한 듯 했다.
물론 작가의 어불성설이나 편견어린 시선 뿐만 아니라 평이한 뒷모습에 대한 예찬이나 감성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두아르 부바가 사진을 찍을 때는 어떤 심상과 시각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그리고 자신의 사진에 글을 써온 미쉘 투르니에의 글에 전부 동의했을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가진 '뒷모습'에 대한 환상을 소재로 선택해 하나의 작업을 이뤄내고 관심을 가지게 만든 것만으로도 반은 매력적이었다고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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