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십진수에 익숙해져 10년 단위로 뭔가를 결산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아쉬운 구석도 있겠지만 씨네 21 편집장으로 5년 이상 버티기도 솔직히 버거웠을 터, 소설을 쓰겠다고 5년간 몸담은 씨네 21을 나와 그녀가 처음 낸 에세이집이다. 이 에세이집이 한 두어 권쯤의 자신이 공들여 쓴 소설 다음에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씨네 21의 권위를 등에 업고 읽혀지기도 했을 이 책만큼 앞으로 나올 그녀의 소설도 읽을 만할지 몹시 궁금하다. 물론 나의 이런 의혹을 일시에 말소시키고 '역시'라고 생각될 만한 책을 내 주었으면 하지만.
전체적으로 당당하고 자신감있는 그녀의 생활태도에 대한 글은 읽기에 무난하지만 기자와 편집장으로서의 경험을 서술한 부분들은 가벼운 읽을 거리에 익숙해진 나에게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충분히 가지지 않고는 낱말의 뜻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만드는가하면 영화 잡지 편집장 생활로 누려왔을 낯선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인 문화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기도 해서 나는 책을 읽으며 인터넷에서 찾아볼 키워드들을 수십 개 적어두기도 했다. 그녀의 글에서는 씨네 21 편집장으로서의 느낌보다 대학시절 사회운동에 가담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고자 했던 앞선 세대의 선배 냄새가 더 짙게 나타나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의 글은 만만하고 말랑말랑한 여성 에세이와는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상당히 있다.
직장여성으로서의 그동안의 고난이나 어려움에 대한 노하우를 조목조목 짚어줄 수있는 책이라기보다는 여러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한겨레에서 씨네21을 내놓게 되기 까지의 배경과 또 여러 영화제를 치뤄내면서 생긴 자부심과 5년 간 영화계에서 있으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구색을 맞춰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뭔가 아직 성공했다고 찬사를 하기에는 부족한 듯도 싶고, 치열한 감동을 주기에도 뭔가 아쉬운 것은 왜일까.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인생선배로서의 그녀의 긍정적인 태도는 메모할 만하다. '나는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을 잃는 그런 것만 아니라면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것이다. 그늘에서 나오면 양지가 한결 따뜻하고, 슬픔의 맛을 아는 만큼 즐거움의 결도 풍성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