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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예술가들은 실은 아무 연관성도 없는 어떤 개별적인 사실들에 개연성을 부여하도록 자신으로부터 강요당하는지도 모르겠다. 폴오스터도 그리고 자신의 대변인인 주인공 삭스도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일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예술가인 마리안 터너도 그들은 예술 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어떤 컨셉과 규정된 룰을 따라 이루어져야 안심하고 자기 삶에 당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듯 하다.
실제로 삶은 어떠한가. 어떤 인과관계로 성립되기에 사실 우연이 넘치고 바로 몇 분후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것을 우연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선택이다. 우연, 운명 둘중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데 스스로 자유롭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삭스는 운명 쪽에 섰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삭스와 피터의 만남,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결혼할 여자를 선택하고 또 이혼을 결정하고 벌어진 상황들을 헤쳐나오는 방법을 나름대로 결정하고, 자신의 나머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나갈 것인지 결정하기 까지 이 모든 것이 우연에서 비롯된 상황들을 자유의지로 이끌어온 것 뿐이다.
작가의 설정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엉뚱하고 다소 작위적인 전개방법은 어색했으나 개별적인 사건을 풀어나가는 서술방법은 대중소설처럼 쉽고 재미있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향해 던지는 말들은 통찰력이 있고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원자폭탄이 투하되던 날 태어났고 자신도 결국 테러리스트가 되어 폭사로 죽음을 맞게 되고, 예의를 갖춘 옷을 입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갔던 6세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자유의 여신상을 폭파하러 다니는 행위를 감행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하면 스스로 만든 운명이고 설정이다. 삭스는 소설을 통해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파괴함으로써 세인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디마지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그의 삶을 대신 사는 듯 정의를 구현하고자 자처하고 나섰다.
삭스는 디마지오가 썼던 '베르크만'에 대한 논문을 읽으며 자본주의 압제의 상징을 제거할 생각으로 저격을 시도했던 베르크만을 통해 어떤 형태의 정치적 폭력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이해했다.'정확하게만 사용된다면 테러리즘은 당면한 문제를 극화하기 위한, 제도적인 권력의 본질에 대해서 일반 대중을 일깨우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도 있어.' 911 테러로 한 방 크게 얻어맞은 현재의 미국에게 자성의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고 이미 꼬집고 있었다.
홉스는'리바이어던'에서 탐욕스러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공포를 규제하고, 인간의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의 보장하기 위해 상정한 대상이 곧 국가인 '리바이어던=거대한 괴물'이라고 했다. 그러면 자유의 여신상을 파괴하고 다닌 삭스의 행동은 이런 국가를 향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엿먹으라는 말인가. 어쨌거나 급작스럽게 국가 운운한 결말은 소설 전체의 흐름에서 봤을 때 약간 오버였다.
소설 속의 인물들을 보면 삭스는 어느 순간 마리아와 유사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고, 릴리언과 마리아는 유사한 방식으로 남자들을 매혹시키며, 피터는 삭스의 친구인만큼 그와 닮아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천연덕스럽게 소설에 말려들어 지루하다고 느낄 새가 없고 의심할 틈도 없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설명형으로 끝낸 결말 부분은 설득력을 잃고 미심쩍어 책을 덮었을 때는 뭔가 할말을 다 못한 원고를 읽은 듯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