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영상이 아른거렸다. 사람이 오가는 소란스런 공항의 대기실에서 바람이 머리카락에 날리는 날, 풀냄새가 나는 묘지로 다시 공항의 대기실 또 유럽영화에 나오는 낯선 인테리어의 집, 다시 공항의 하얀 벽 귀퉁이로 전환되는 씬을 따라 다녔다.
융통성없어 보이는 외모로 매사 따분하고 관심없다는 표정의 한 남자와 껄렁대며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기분나쁘게 실실 웃으며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또 한 남자. 시종일관 서로를 무시하는 투의 두 남자의 대화로 이어지는 이 책은 실제로 가독성이 고려된 편집과 글자 크기 때문에 어려움없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반면, 중간 중간 작가의 지적인 관념을 드러내기위한 철학적 인용 때문에 멈춰 꼼꼼히 되새기게 만들기도 한다.

제목을 충분히 의식하고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긋나는 불편한 그 둘의 대화에 말려들어 갑작스런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이적'이라는 가수는 실제로 자기 자신을 적으로 설정하고 'this 적'이라는 가명을 지었다던데, 내 안의 적을 의식하면서 스스로에게 부끄럼없이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그에게 거침없고 무자비한 말투의 내적 자아와의 대면은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 것인가.

자살에의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버티지 않고 순순히 자살을 감행해나가는 인물들을 작품속에서 낳으며 그녀 자신은 알코올 대신 차를 즐겨 마시며 절제되고 정제된 채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심히 느긋하게 읽기. 그리고 놀라 잠깐 멈춤 시간 몇 초 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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